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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뭐예요? 연극이요!
제34회 근로자연극제 참가기

하윤경_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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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경
  • 대학 졸업도 하기 전인 2008년 말, 스물세 살에 서울문화재단에 입사하여 경영기획 파트에서 꼬박 3년 3개월을 근무하다, 돌연(?) 퇴사하여 곧바로 찾아간 곳이 ‘엔씨어터’라는 연극 동호회였다. 재단에서 일하면서 예술가들을 뒤에서 지원해주는 일이 아닌 ‘내가 전면에 나서 직접 예술을 하는 예술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언뜻 했었던 것 같다. 선배들과 점심시간에 모이면 “윤경씨, 배우해. 내가 기획사 차릴게.” 라며 진심어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었다. 그리고 백수가 되자마자 ‘이건 꼭 해야 된다’며 무작정 신촌 연습실로 찾아갔더랬다. (이럴 땐 막무가내가 곧 추진력이 된다.)

    이렇게 내 나이 스물일곱, 정확히 2012년 3월 21일, 연극과 처음 연을 맺었다. 2개월간 동호회 사람들끼리 자체적으로 꾸려 나가는 연기분과 수업을 마치고, 한 달 남짓한 연습기간을 거쳐 6월 2일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의 정미연 역으로 첫 연극 무대에 섰다. 실제 극장이 아닌 연습실에 책상 하나, 의자 몇 개 갖다놓고 치러진 공연이었지만, 대본이란 걸 가지고 대사라는 걸 외워서 상대역과 함께 관객들 앞에서 연기라는 걸 해본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엄청난 경험이었다. 되게 못하는데 진짜 진지하게 열심히 했던 그때를 생각하니 웃음이 나온다. 그 길로 (백수 주제에) 근로자 연극제에 출품하는 동호회 정기공연 배우에 지원하여 3개월을 내리 <보이체크>의 마리와 함께 살았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대학로연습실에서 연기 연습을 하는 기분이 참 묘했다. 그렇게 9월 1일 생애 첫 소극장 무대에 올랐다. 성균관 소극장에서의 마리 하윤경.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의심해볼 겨를도 없이, 내 몸 속 세포 하나하나까지 그 순간에 몰두해 있었다. 무대 위의 나는 팔딱팔딱 살아 있었다. 이거거든!

    보이체크
    제12회 엔씨어터 정기공연 <보이체크> 중 한 장면. 2012년 9월

    반짝이는 순간은 스치듯 지나가 버렸고, 앞으로 나아가야할 길(그야말로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제자리였다. 겁쟁이인 나는 결국 취미는 취미로 남기기로 하고 백수 생활 8개월 만에 다시 사무실로 회귀했다. 거창하게 말해 예술행정가에서 교육행정가가 된 것 빼고는 달라진 게 없었다. 캠퍼스가 예쁜 모교에서 평범하게 돈벌이한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한동안 연극과는 등을 돌리고 지냈다. 그러다 근로자연극제가 예년보다 앞당겨 열린다는 희소식을 듣고는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처럼?2013년 2월 16일?오디션장으로 달려갔고, 이틀 뒤 첫 연습을 시작으로 <세자, 이선>의 영빈과 달맞이꽃이라는 두 가지 배역을 맡게 되었다. 사극인 것도 어려운데 완전 상반된 캐릭터 멀티에다가 심지어 사람도 아닌 꽃이라니! 멘붕이 오려는 찰나에 ‘나만 할 수 있는, 나밖에 못하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만들자, 그 배역에 최대한 몰입해서 매력적으로 연기하자’라고 야심찬 각오를 다졌었다.

    6월 1일 공연까지, 100일이 넘는 시간을 <세자, 이선>의 영빈과 꽃으로 살며 생각보다 쉽게 휘청거리는 날 발견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작년 <보이체크>때의 긍정 에너지는 백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 일과 연극을 병행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극의 특성상 ‘나 하나쯤이야’하며 연습에 하루라도 빠져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더 부담감을 가중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힘겹게 몸과 마음을 추슬러 연습에 가면 언제 괴로웠냐는 듯 다시 쌩쌩해지곤 했다. 연습 초반 2,30분은 항상 땀을 한 바가지 쏟는 신체훈련으로 시작했지만, 그것조차 즐겁고 신이 났다. 연습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몸을 풀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신체훈련이 필수라는 생각이 깔려 있어서인지, 어쨌든 일이 아닌 취미 활동을 하고 있어서인지.

    세자, 이선의 연습장면
    <세자, 이선>의 연습장면

    연극은 참 매력적이다. 내가 아닌 내가 되게도 해주고, 숨어있던 나를 찾아주기도 하니까. 연습 과정 중에 ‘과장해서 표현하기’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오버를 했었다. 코미디언마냥. 하지만 표정만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그런 내 모습에 빵빵 터지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감을 얻었다. 나도 사람들을 웃길 수 있구나 놀라워하면서. 달맞이꽃이 “지금 나 밤 에만 핀다고 무시하는게요?”를 더 능청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도 진짜 아줌마 같다고 박장대소해줬던 연출과 배우들 덕분이다. 연습 중반부가 지난 시점, 연출의 “윤경아, 춤추자”는 한마디에 씻김굿 동영상을 보고 얼추 비슷하게 따라한다는 게 공연의 마지막 장면이 되어버렸다. 난생 처음 춰보는 한국무용이었는데(무용이라고 갖다 붙이기도 민망하지만), 급한 성격 탓에 자꾸 동작이 현대 클럽화(?) 되어, 연출과 배우들이 ‘내가 너무 느리구나’를 속으로 생각하며 추라고 조언해주기도 했다.
근로자 연극제 참가작
제34회 근로자 연극제 참가작
제13회 엔씨어터 정기공연
<세자, 이선>

공연장 앞 풍경
<세자, 이선> 공연장 앞 풍경
  • 공연후 인사
    (왼쪽부터) <세자, 이선> 공연장,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공연 당일 5번 출입구. 암흑 속 아수라장, 혼비백산이었던 그 현장의 긴장감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야광테이프의 소중함을 아주 뼈저리게 느꼈던, 내가 야맹증이 아닌가 숱하게 의심하며 답답해했던 그 시간들. 난 특히 꽃과 영빈의 의상을 소품과 함께 단시간 내에 신속하게 교체해야 해서 사실 연기보다도 소품 하나라도 못 챙기고 나가면 어쩌나, 옷 제대로 못 갈아입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더 많았었다. 영빈과 달맞이꽃 모두 머리에 커다란 걸 하나씩 쓰고 있어서 움직일 때 떨어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것도 큰일이었다. 그렇게 런웨이의 모델마냥, 호수의 백조마냥 뒤에서는 생난리를 치다 무대에 나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하게 연기를 했다. 아, 그 순간의 긴박감. 이제 다 끝났으니 웃으며 얘기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연극의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일지어다. 지금까지는 근로자의 자격으로 근로자 연극제 무대에서 연기했지만, 언젠가 프로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는 날을 꿈꿔본다.


  • 제34회 근로자 연극제 포스터
  • <제34회 근로자연극제>
    기간 : 2013.05.10(금)∼2013.06.23(일) (총 37팀 공연)
    장소 : 대학로극장, 우석레퍼토리 외
    주최 : 고용노동부, 근로복지공단, KBS한국방송
    주관 : KBS미디어
    =============================================
    서울 뿐 아니라 대전, 포함, 제주 등 실력 있는 각 지역의
    직장인 극단들의 참여하는 전국 직장인들의 연극축제로서,
    최고상에 고용노동부장관상과 상금 500만 원이 수여되는 등
    16팀(명)에게 각종 상장과 상금 1,770만 원이 지급되며,
    최고상과 금상 수상 극단은 해외문화체험 기회가 주어진다.

태그 근로자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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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경

하윤경 직장인
지극히 현재 지향적이고, 무한 긍정적인, 나이는 서른을 바라보지만 마음만은 평생 이십대 초반일 것만 같은, 무심하지만 즐길 줄 아는, 고지식한 행정가지만 예술적 감성을 동경하는 나는 하윤경.
웹진 26호   2013-06-20   덧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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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a
멋져요:) 늘응원할게요-!

2013-06-20댓글쓰기 댓글삭제

바구니
대학 시절 연극동아리에서 무대에 올랐던 기억이 나네요. 소녀, 할머니, 간호사, 정신이상자, 아줌마 등등 다양한 역할을 했더랬는데... ㅋㅋ 무대에서의 배우란 정말 멋진 일이면서 정말 힘든 일인거 같아요

2013-06-21댓글쓰기 댓글삭제

지별
취미가 관객입니다~~열심히 하세요

2013-06-21댓글쓰기 댓글삭제

윤남수
무대 경험라고는,학생 때 영어동아리 소속으로 축제기간에 짧은 영어연극에 출연해 대사 몇 마디 한 게 전부이지만 대학로 다니다가 벽에 붙은 워크숍 참가자 모집 안내문을 보면 늘 멈춰서 읽곤 합니다.죽기 전에 한 번은 경험해보리라 하면서

2013-06-22댓글쓰기 댓글삭제

이주영
아니, 여기서 보네요! 우와 반가워요! 그리고 멋집니다~~응원할게요!

2013-06-26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