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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과 관객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
‘마로니에 여름축제’ 관객참여 RPG형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김나볏 _ 뉴스토마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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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한번 쯤 연극 상연 과정에 호기심을 품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저기 무대 위 배우는 공연 전 분장실에서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극장 천정 위 수많은 조명은 누가 언제 다 달아놓은 것인지, 좀처럼 모습을 공개하지 않는 연출과 작가는 과연 어떤 사람들인지, 공연 팸플릿의 홍보 문구는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든 것인지 등등. 극장의 환영을 깨지 않기 위해 공연팀이 비밀스럽게 숨겨놓은 것들에 대해 관객은 문득문득 궁금하다.
2013 마로니에 여름축제
2013 마로니에 여름축제
ㅇ주제 : 대학로 천지개“벽”
ㅇ기간 : 7.16(화)~27(토)
ㅇ장소 : 마로니에공원,
대학로예술극장 등
ㅇ주최 : 한국공연예술센터
blog.naver.com/m_sf08
  • 반갑게도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주관하는 ‘마로니에 여름축제’ 기간 중 관객의 이 같은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기회가 있었다. ‘공연의 속살’을 기꺼이 내보인 주체는 관객참여 RPG, Role Playing Game형 연극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팀이다. 7월 20일부터 총 5회에 걸쳐 진행된 이 공연에서 관객은 대학로 한복판에 위치한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극장 공간 뿐 아니라 1층 씨어터카페, 지하 분장실, 2층 사무실, 옥상의 스튜디오하이까지 샅샅이 누비는 작은 행운을 누렸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는 단순한 극장 투어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엄연한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영상을 통해 게임 - 연극의 콘셉트를 전달받는다. 이후 4명의 조연출 캐릭터 중 마음에 드는 인물을 골라 팀원이 되고, 조연출을 따라 극장을 돌아다니는 동안 RPG처럼 역할을 부여받는다. 각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극을 관람하다 갈등의 정점에서 ‘퀘스트’Quest, 롤플레잉게임에서 주인공이 하달 받는 일종의 임무를 부여받고, 미션을 수행한다. 얼떨결에 필자도 염세적인 캐릭터의 조연출을 따라 덩달아 미션을 수행하다 무료음료 쿠폰을 따내는 쾌거(?)를 이뤘다.

    공연의 겉모습은 이벤트형 극장 투어이지만 관객은 공연 중 시시각각으로 ‘벽’이라는 주제를 맞닥뜨리게 된다. 전반적인 분위기를 지배하는 것은 제시간에 맞춰 공연을 올려야 한다는 스트레스다. 이 가운데 분장실에서 배우들이 부리는 고약한 성질머리, 파탄직전에 가까운 작가와 연출가의 회의, 윗사람의 눈치를 보는 기획회의, 한국의 공연제작 문화에 질려버린 해외 안무가의 모습,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느라 희생당한 조연출의 사생활 등에 대한 이야기가 극장 곳곳에서 펼쳐진다. 극장과 극장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었지만 사람 사이 ‘벽’이라는 풍경은 일반 관객에게도 낯설지 않게, 직관적으로 다가온다.(여담이지만, 역시나 실제 경험을 녹인 이야기가 생생한 관극 경험을 돕는다. 주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연출가와 작가의 실제 성격, 스태프의 풍부한 조연출 경험담이 이번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한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 관객의 역할 혹은 미션은 결국 장면마다 마주친 ‘벽’을 해소하는 것이다. 각 장면이 끝날 때마다 관객은 게임이나 고백의 형식을 빌려 ‘벽’에 조금씩 균열을 낸다. 갈등을 빚고 있는 작가와 연출을 대신해 카페를 돌아다니며 공연 스태프를 찾아주기도 하고, 각자의 이루지 못한 절실한 소원을 있는 힘껏 외치고 데시벨로 측정하며, 공연팀의 화합을 기원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댄스를 배워보기도 한다. 사실 이 공연은 관객의 적극적인 반응이 없다면 완성되기 힘든 공연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의 관객은 공연을 완성하는 주체로서 완벽하게 역할을 수행한다. 이는 단순히 게임 참여의 재미 때문이라기보다는 단순하지만 설득력 있는 이야기 구성과 연출에 힘입은 바 크다.

    드디어 관객이 마지막 벌어진 난장을 정리할 시간이다. 한바탕 유쾌한 일정이 끝나고 관객은 다시 극장에 모인다. 관객이 관객석이 아닌 무대 위에 서자 흩어졌던 공연팀이 모여 그동안의 갈등을 여기저기에서 시연한다. 어두운 극장 정면에는 두꺼운 벽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다. 관객들은 배우들과 함께 무대 위에 쏟아지는 형광색 고무공을 던지며 실체하는 벽을 허물어뜨리고 커뮤니티 댄스를 추며 갈등을 해소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거대한 스크린에서는 관객이 공연장 곳곳에서 적어뒀던 속마음, 무대 위 실시간 퍼포먼스가 차례로 비친다.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내일 공연인데 어떡하지!> 공연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뜨거운 여름, 극장과 관객이 만나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친숙함이라는 개념이 자리한다. 아방가르드한 예술적 실험도 중요하지만 우선 관객과 극장을 제대로 만나도록 하는 게 더 시급한 것 아니냐는 마음이 읽힌다. 여름 한 때 쯤은 대학로도 열린 마음으로 관객친화적인 공연을 선보여도 괜찮지 않을까. 우연이지만 국내의 대형 록페스티벌과 빅매치(?)를 벌인 날, 대학로예술극장의 분위기는 유명 록스타의 스탠딩 석 못지않게 뜨거웠다.

태그 마로니에 여름축제, 씨어터RPG,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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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김나볏 공연칼럼니스트
신문방송학과 연극이론을 공부했으며, 공연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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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29호   2013-08-0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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