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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의 독백
연희문학창작촌 가을문학축제 ‘다it다-너의 독백을 들려줘!

성동혁_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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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it다
연희문학창작촌
가을문학축제 ‘다it다’
  • 시월의 둘째 주 수요일. 그러니까 다시 공휴일이 된 한글날. 연희문학창작촌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을문학축제 ‘다it다’에 온 사람들이었다. 축제 전 태풍 소식에 걱정했던 사람들을 뒤로 하고 연희는 지극히 화창했다. 반팔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사람들이 걸어 다녔다.

    연희의 입구는 가장 낮은 곳에 있다. 그래서 연희를 둘러보려면 오르막을 오를 수밖에 없다. 점점 가빠지는 숨이, 점점 느려지는 걸음이 연희를 걷는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입구에 들어와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연희에서 준비한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었다. 바리스타를 자청한 훈남 시인이 직접 커피를 내려 주고, 그 옆엔 작가들에게 기증 받은 책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작가가 직접 읽던 책을, 작가의 서명이 되어 있는 책을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문학과 관련된 전시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어떤 시인은 직접 뜨개질한 옷과 컵받침을 판매했다. 축제를 통해 얻은 수익금을 티벳 난민 아이들에게 기부하고자 모인 작가들. 그들의 숨결이 곳곳에 깃들어 있었다. 햇볕의 결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풍경이 화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다it다


    난 몇 달 전 연희문학창작촌의 입주 작가였다. 내게 연희는 정적의 장소였다. 새소리와 빗소리, 가끔의 발자국 소리 정도가 그곳의 대부분이었다. 내가 지내던 방엔 세탁기가 없었다. 빨래를 하려면 공용 세탁실에 가야만 했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계단을 올라오면 오른쪽에 야외무대가 보였다. 나는 빨래를 하고 텅 빈 무대의 객석에 앉아 숨을 고르곤 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세상에 햇볕과 나만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그 무대는 고요로 기억된다.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곳. 어떠한 타인도 없이 스스로의 숨소리만 들리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너의 독백을 들려줘!’가 진행되었다. ‘너의 독백을 들려줘!’는 연희문학창작촌의 《문학, 번지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극단 달나라동백꽃이 개최한 독백 쓰기 백일장이었다. 개회식을 하며 김은성 희곡 작가는 ‘독백은 마음의 소리’라 얘기했다. 그가 참가자들에게 내건 심사 기준은 ‘심각한 것 보다는 가장 웃긴 독백’이었다. 참가자들이 자칫 독백이란 말에 눌려 자기다운 독백을 쓰지 못할 것 같아 한 배려의 말 같았다. 그는 백일장의 시간이 ‘본인 마음의 소리를 글로 표현하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마지막으로 ‘연희가 평소엔 작가들의 창작 공간이지만 오늘은 여러분들의 창작 공간’이라며 가볍고 환한 연희의 풍경을 열어 주었다.


    다it다

다it다
다it다
  • 여러 글제들을 주어졌다. 그로 인해 참가자들은 자신과 맞는 길을 좀 더 수월하게 찾는 듯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희에 나들이 왔으리라 생각했는데 참가자들은 글쓰기 시간이 시작되자 어디론가 바쁘게 사라졌다. 연희의 소나무 그늘 밑에서 열중인 사람들이 보였다. 그렇게 두 시간이 좀 덜 지났을까 독백을 쓴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부터 중년의 주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독백을 가지고 모였다. 심사를 할 동안 달나라동백꽃 극단의 배우들이 희곡 속의 대사나 독백 등을 들려주었다. 또한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아코디언 공연이 진행 되었다.

    심사가 끝나고 시상이 진행되었다. 다수의 수상자가 나왔다. 상은 이름은 금, 은, 동이 아니라 희곡의 대사를 딴 이름이었다. 독백의 완결성보다, 독백 하나하나의 의미를 일깨워주려는 주최 측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이런 세심함이 바로 ‘너의 독백을 들려줘!’가 한두 명의 기쁨이 아닌 모두의 축제로서 빛나게 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했다. 시상은 팟캐스트 <희곡을 들려줘!> 공개 방송과 함께 되었다. 시상자들의 독백을 읽는 것으로 길고 차분한 시상식을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시상이 진행될 때마다 서로를 위해 웃고 서로를 위해 울었다. 그것은 분명 스스로만의 독백이라기보다는 대화의 한 형식이었다.

    수상자 중 한 명이었던 당당하고 발랄하던 초등학생의 대답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중년의 여인의 긴 시집살이를 들으며 함께 울기도 했다. 모두가 시집살이를 하진 않았지만 그 독백에 공감했던 것은, 그녀가 모두의 앞에서 울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독백에서 뛰어나와 사람들에게 자신의 쓴 뿌리를 내어 놓았다. 홀로만 삼켰으면 더 부풀었을 그녀의 마음이 홀로의 눈물이 아닌 모두의 눈물이 되는 순간, 연희의 풍경과 함께 조금 가벼워지고 환해진 듯했다.


    다it다


    우린 많은 말을 삼키고 산다. 그것은 병이 되기도, 기도가 되기도, 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독백은 육성을 통해 나왔으면 한다. 말은 물과 같아서 고이면 썩기 쉽다. 그리고 흐를 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지나치게 말을 아끼면 스스로의 마음과 세계의 풍경에 큰 가뭄이 올 것이다. 갈라진 마음에 어떠한 꽃도 풀도 뿌리 내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가끔은 독백을 밖으로 내어 보는 건, 혹은 손으로 써 보는 건 어떨까? 수요일, 소나무 그늘 밑에서 몇 십 년 동안 묵혔던 말을 처음으로 뱉었던 그 여인처럼.

    실은 우리가 모두의 앞에서 독백을 공개한 순간. 우린 이미 독백을 잃은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독백이 타인에게로 옮겨가 대화가 된 순간, 더 선선한 바람과 더 화사한 햇볕이 든 걸 우린 보았다. 온전히 그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기에 가능했던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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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혁

성동혁 시인
2011년《세계의 문학》신인상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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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34호   2013-10-2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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