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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슬러 과거의 나를 만나는 무대
한국배우 100인의 독백-모노스토리 시즌3

우현주_배우 겸 연출가, 극단 맨씨어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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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을 거슬러 과거의 나를 만나는 무대
  • 2012년, ‘한국배우 100인의 독백-모노스토리’라는 기획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근사한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생활 속에 예술이 스며들 수 있는 기회로 느껴졌고, 연극을 하는 배우들이 소중히 여겨지는 느낌. 동료, 선배 배우들이 어떤 모습으로 독백을 하실지 무척이나 궁금했고, 자신이 배우인 만큼 ‘나라면 어떤 작품의 어떤 부분을 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출간된 책을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는 마치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워서 한참을 서서 읽어보며 공연히 배우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던 기억도 난다.

    올 초, 데이빗 해어 선생님의 <은밀한 기쁨> 공연을 준비하던 분장실에서 시즌3에 참가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래서 아주 기뻤다. 영광이었다. 아,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왔구나. 어떤 작품의 어떤 독백을 하면 좋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은 당시 공연 중이던 <은밀한 기쁨>이었다. 하지만 그 배역이 나라는 배우의 기억 속에 가장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배역인가, 하는 질문에 아니다 싶었다. <갈매기>의 아르까지나? <썸걸(즈)>의 은후? 모두 다시 한 번 연기해보고 싶은 배역이지만… 배우 우현주가 연기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작품. 관객과의 호흡이 가장 좋았던 작품은 <벚꽃동산>의 라넵스카야. 실제의 나와 가장 가까운 인물. 그래. 류바.

    세월을 거슬러 과거의 나를 만나는 무대

    이미 1년 반 전에 끝난 공연의 인물을 다시 만나는 일은, 세월을 거슬러 과거의 나를 만나는 일처럼 신비롭고 설레었다. 벚꽃 잎이 온 무대에 깔려 있던 아름다운 무대를 다시 떠올리며 온갖 메모로 가득 차 있는 대본을 다시 읽으니 마치 서랍 깊숙이 숨겨 두었던 연애편지를 꺼내어 읽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때 이해할 수 없었던 인생에 대한 메타포나 사랑에 대한 극중 인물의 태도 등도 더 간절히 와 닿았다. 역시 체홉 선생님이구나, 라고 감탄을 거듭하며 혼자 연습하는 내내 어찌나 행복하던지. 공연 중인 작품을 마치고 운전을 하면서 대사를 읊다가 눈물이 쏟아져서 차를 세우기도 하고. 다른 분장을 한 채로 무대 구석에서 독백을 생각하다가 ‘이러다 큰일 내지’ 싶어서 정신을 차리기도 하고. 의상을 꺼내 입을까, 그건 오버가 아닐까, 온갖 생각을 하며 행사 날만 기다렸다.

    드디어 당일.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과연 관객이 많이 와 주실까 하는 부분. 그 다음은, 순간적으로 몰입을 해야 하는데 가능할지. 또 공연을 지켜보며 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가다가 그 장면을 만나는 것이 아닌데 관객들이 이입을 해 주실지. 모두 자신이 없었다. 점심도 굶고 극장에서 간단한 리허설을 하고, 모두 처음 개인적으로 만나는 다른 배우들과 분장실에서 어색한 파이팅도 나누고.

    무대에 올랐다.

    일단 객석이 가득 차 있어서 깜짝 놀랐고, 또 기뻤다. 굉장히 떨렸는데, 극 중 인물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인지라 도움이 되었다면 도움이 되었다. 짧은 암전 후에 조명이 들어오고 첫 대사를 하는 순간, 모든 걱정이 기우였다는 확신이 들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깊은 교감을 관객들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무대를 독차지한 배우의 짧은 독백을 보기 위해 관객들 역시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아, 행복하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몰랐던 이 작품, 이 인물, 이렇게 집중하고 있는 준비된(?) 관객들 앞에서 연기하게 되다니. 끝나가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좀 더 길게 할 걸.



    독백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는 여전히 긴장이 풀어지지 않아 좀 더 자연스럽게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후 다른 배우들의 공연과 이야기를 듣고 나니 더욱 아쉽기만 했다. 하지만, 연기할 때의 행복감, 관객과의 일체감은 그 어느 때보다 짜릿했고,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도,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들을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아, 이렇게 여러 명의 다른 배우들의 다양한 작품들 속 다양한 인물들을 한꺼번에 보는 흔치 않은 즐거움이라니! ‘한국배우 100인의 독백’ 시리즈 기획이 진정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기획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연극을 하는 사람으로서, 아니, 연극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바라본다. 거기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순수한 정신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기에.

    [사진: 제35회 서울연극제]

태그 나를 만나는 무대, 한국배우 100인,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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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우현주 배우 겸 연출가. 극단 맨씨어터 대표.
<태양왕>, <은밀한 기쁨>, <터미널>, <왕은 죽어가다>, <14인 체홉>, <벚꽃동산>, <인형의 가>, <갈매기>, <디너>, <썸걸(즈)> 외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처음>, <울다가 웃으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굿바이 쏭>등을 연출했다. 트위터 @woohyunzoo
제43호   2014-05-08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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