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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작은 발견, 독립공연예술가들이 펼치는 잔치
(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한여름 밤의 작은 극장>

채민_드라마터그, 축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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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밤의 작은극장 포스터

  • 국립극단 앞마당에 들어섰다. 유난히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많았다. 한 손에는 종이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엄마를 끌고 간다. 다음 공연을 찾는 아이는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것처럼 신이 나 있었다. 나는 ‘한여름 밤의 작은 극장’의 첫 풍경에 말 할 수 없이 행복해졌다. 무채색의 고층 빌딩들 사이에 빨간 극장은 나에게도 동화적인 공간이다. 게다가 극장 터 사이사이에 숨겨진 이야기들이라니… 아이들이 놀이공원에 온 듯 신이 나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티켓 박스 앞 벤치에 앉아 시간표를 짰다. ‘백성희장민호극장 뒤 평상’, ‘정화극장 고물상 뒤 천막’, ‘블럭블럭극장 사무동 계단 우측’ 등 공연보다 장소가 더 눈에 들어온다. 공간에 스미는 예술은 공간을 발견하고, 일상의 공간을 낯설게 한다. 이것이 내가 극장 밖으로 나오는 공연에 매료되는 이유이다. 맛있는 음식을 아껴먹는 심정으로 우선 가장 익숙한 공간인 ‘백성희장민호극장’으로 들어갔다.

    한여름 밤의 작은 발견, 독립공연예술가들이 펼치는 잔치

    입담 좋은 소리꾼 조아라가 시작부터 좌중을 흔들어 놓는다. 여느 때와 같이 객석에 앉아 어둠 속으로 묻히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도입부가 한참 지나도록 객석의 불을 끄지 않는다. 꼼짝없이 제2의 고수가 되어, 추임새를 넣으며 모두 함께 ‘수궁’으로 들어갔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조아라의 성량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평소와 다르지 않은 객석의 구조는 아쉬운 감이 있다. 한여름 밤의 ‘작은 극장’답게 연희자와 관객의 거리가 조금 더 가까웠다면 토선생의 파란만장한 여정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을 것이다. <수궁가가 조아라>

    밖으로 나오니 해가 기울었다. 국립극장은 도시의 여느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고, ‘ㄷ'자 형태로 너른 마당을 안고 있다. 게다가 사무동 뒤로 높게 솟은 건물이 없어, 극장이 푸르스름한 하늘을 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눈으로 하늘의 무게를 느끼고 있는 사이, 잡동사니가 잔뜩 실린 리어카가 따듯한 음악 소리를 흘리며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뒤따르는 무리에 섞여 공연장을 찾아가는 길, 극장 구석구석에 작은 불빛들이 보였다. 그 아래서 독립공연예술가들이 저마다의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리어카는 유령만 떠도는 텅 빈 재개발 구역으로 찾아든다. 기타 연주에 맞춘 유령의 노래와 함께 리어카는 ‘연탄집 흰둥이’의 집이 되었다. 흰둥이가 낳은 여의주를 던지고 받으며 아이들은 극에 빠져들었다. 극의 중반쯤, 하늘에서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지만 끝날 때 까지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흰둥이의 집이 다시 리어카가 되어 마당으로 나갈 때,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들이 따라 뛰어 나갔다. 공연을 보는 내내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은 이와 같은 아이들의 즉각적인 반응이었다. 중요한 것은 ‘관객교육’이 아니라 어디에서나 즐거운 ‘관극경험’이 아닐까. <연탄집 흰둥이>

    사무동 옥상은 양치기 소년의 고독한 언덕이 되었고 <소년 늑대를 부르다>, 정화극장 고물상 뒤 천막은 한 남자의 서글픈 거주지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아는 남자> 미처 가보지 못한 분장실과 사무동 앞에도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있었다. 예술은 사람들이 평소에는 갈 일이 없거나, 혹은 접근할 수 없는 공간을 열게 한다. 잊힌 공간에 환상을 불어넣고, 그것을 보는 관객은 각자의 맥락에 따라 공간에 대한 자신만의 기억을 갖게 된다. 이렇게 어제 걸었던 그 길은 어제와는 다른 길이 되는 것이다.

    한여름 밤의 작은 발견, 독립공연예술가들이 펼치는 잔치

    공연이 녹아 들어갈 만할 장소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작년에는 빈 공간이었던 곳들이 접근할 수 없는 조형물이나, 밟지 못하는 잔디, 혹은 전에 없던 규칙들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들과 마주하게 된다. 마치 유휴공간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는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이것저것을 채워 넣는다. 심리적으로 여유로운 삶을 위해서는 물리적인 여백이 필요하다. 국립극장에는 이러한 유휴공간이 고의적으로 많아 보인다. 밤이 되고, 독립공연예술가들에 의해 구석구석 발견된 공간들이 각자의 빛을 띠고 있었다. ‘한여름 밤의 작은 극장’은 잠시나마 삶의 박자를 길게 늘어뜨려 주었다.

    [사진: (재)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제공]

  • 태그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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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민

    채민 드라마터그, 축제기획자
    신문방송과 연극학을 전공했고, 드라마터그와 축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n.chae.3
    제51호   2014-09-04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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