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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장소

현대, 12시를 넘긴 새벽 시각. 어느 학원가 보습학원의 교실

나오는 사람들

김희연, 박준석, 최유정, 선생님

희연은 카드형 단어장을 암기하고, 그 뒤에 앉은 준석은 모바일게임을 하고 있다. 시간이 밤 10시를 넘긴다. 서울에 있는 학원은 ‘학원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적발되지 않기 위해 모든 빛과 소리를 죽여야만 한다. 교실의 불이 일제히 꺼진다. 하지만 둘 다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가방에서 헤드라이트를 꺼내 쓴다.

희연
Conform 순응하다, 따르다... Consistent 모순이 없는, 일관된
준석
어차피 시험 시간도 한참 남았는데 뭐 하러 그렇게 열심히 하냐?
희연
맨날 아슬아슬하게 통과하지 말고 얼른 단어나 외워라.
준석
단어는 시험 10분 남았을 때 보는 거 아닌가요?

유정이 들어온다.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쓰고 있다.

유정
얘들아! 나 해냈어...
준석
쾌변을?
유정
그런 거 아냐! 알려줄까?
준석
됐어.
유정
희연찡은?
희연
자리에나 앉아,

유정은 희연의 옆 책상에 앉는다. 물론 유정의 자리는 거기가 아니다.

유정
잘 들어. 사실... 나 방금 여기 경찰에 신고했다?
희연
뭐?!
준석
최유정 너 미쳤냐?!
유정
쉬이잇! (실실 웃는다) 쌤 오겠다.
준석
(속삭이며) 너 미쳤어?!
유정
아니, 화장실을 갈라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달이 커다랗게 떠 있는 거야. 나는 여 기 비좁아 터진 곳에서 겨우 숨 쉬고 있는데. 그래서 신고했어.
준석
겨우 그것 때문에 학원을 짭새한테 꼰지른다고?
유정
그러면 안 돼?
희연
됐다. 말을 말자.
유정
둘 다 반응이 왜 그래? 다들 쉬는 시간만 되면 수업 듣기 싫다, 학원 터트리고 싶다 하더니.
준석
그걸 진짜로 하는 새끼가 어딨냐?
유정
내가 너네들이라면 좀 더 기뻐했을 거야. 이딴 문제집은 버리고, 책상들은 다 쓰러뜨리고! 복도에 서 소리도 지를 거라고. (잠시 말 멈추고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교실 문이 매섭게 열린다. 선생님이다. 세 사람은 헤드라이트를 끄고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유정
(문이 다시 닫히는 걸 확인하고) 언제까지 눈치만 보면서 살아야 되냐구... (헤드라이트를 켠다) 그래도 괜찮아! 경찰이 와서 다 해결해줄 거야.
준석
부질없다 부질없어.
유정
왜?
준석
진짜 몰라서 묻는 거야? (창가로 간다) 여기 와서 봐봐.
유정
가려져서 안 보여.
준석
보인다고 상상하고. 이 거리에 학원이 몇 개 있냐?
유정
음... 겁나 많지?
준석
그럼 우리 학원 망한다고 학원가가 통째로 망하겠니?
유정
(창틀에 기댄다) 그래도 적어도 며칠은 쉴 수 있잖아.
준석
아니. 여기가 망하잖아? 그럼 우린 바로 옆 학원으로 옮겨질 거고, 옆 학원이 망하잖아? 그럼 또 옆옆 학원으로 옮겨질 거야. 그리고 그거 알아? 거기서도 우린 밤에 불 다 끄고 이렇게 남아 있어야 돼!
유정
저기 꺼진 창문 안에도 애들이 숨어 있겠지?
준석
글쎄.
희연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해. 그래서 학원을 다니는 거고.
준석
맞아. 쟨 단소도 학원 가서 배우잖아.
유정
단소도 학원 같은 게 있어?
준석
그러니까. 도라지 타령이 뭐가 어렵다고.
희연
아 소리가 안 나는 걸 어쩌라고!!

갑자기 교실에 불빛이 환하게 밝혀진다.

희연
(눈 찌푸린다) 이게 지금 왜 켜져?
유정
(문을 빼꼼 연다.) 경찰이 쌤 잡으러 왔다!
준석
진짜?
유정
나 저 쌤이 저렇게 쩔쩔매는 거 처음 봐.
준석
야, 같이 보자.
유정
(훔쳐본다) 쌤이 경찰한테 고개 숙인다.
준석
(같이 훔쳐본다) 진짜 설설 기네.
유정
어...? 왜 경찰이랑 쌤이 악수하지? 왜 안 잡아가는 거냐고!
준석
애초에 잡을 생각이 없는 거야.
유정
그래서 그냥 이렇게 간다고? 우리가 여기 있는데?
희연
같은 어른이니까, 그냥 넘어가 주는 거지. 한두 번 당해봐?
유정
저기요? 저 여기 있어요!! (문을 연다) 씨발 나 여기 갇혀 있다고요!!!
어른들의 시선이 유정에게 꽂힌다. 희연이 유정을 뒤로 감싸고돈다.
희연
아, 어... 저...... 얘가 스트레스! 학업 스트레스를 받으면 꼭 이렇게 관종짓을 해요, 하... 하하... (90도로 인사한다) 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유정
(희연을 보고) 죄송합니다.
희연
(문을 닫는다) 얼른 돌아가 앉자. (준석에게) 너도 거기 서 있지만 말고.
준석
어... 응.
세 사람은 다시 자기 자리에 돌아간다. 이윽고 문이 열린다.
선생님
(목소리) 최유정. 나와.
유정은 복도로 나간다. 선생님이 벽을 치거나 고함치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온다.
희연
(고개를 숙이고) Desire 원하다, 욕구, 욕망 Desire 원하다, 욕구, 욕망... Despite 그럼에도 불구 하고, Despite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석
(단어장을 넘기며) 너무 밝으니까 오히려 눈에 안 들어온다.
희연
계속 보다 보면 익숙해져.

잠시 뒤 문이 열린다. 표정이 어두워진 유정이 돌아온다.

준석
야 최유정 괜찮냐?
유정
그냥 조금 혼났어. 너무 신경 쓰지마.

유정은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단어장을 꺼낸다.

유정
Admire 존경하다, 칭찬하다, 감탄하며 바라보다
Adolescent 청소년, Adolescently 청소년에 걸맞게, 미숙하게
준석
야... 쟤 진짜 괜찮은 거 맞아?
희연
몰라! 나도 모른다고!! (사이) 아이씨...

희연은 일어나서 유정의 단어장을 뺏는다.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린다.

유정
나 단어 외워야 해.
희연
그거 시험 범위도 아냐.
유정
나 진짜 괜찮,
희연
(말끊는다) 안 괜찮잖아, 내가 지금 니 생각하는 거 맞춰볼까? 난 잘못한 거 없는데 존나 기분 거지같네. 내 말 틀려? 한 명은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지랄하고, 또 한 명은 걔 때문에 쩔절매고 있고. 내가 씨발 왜 남에 눈치 봐가면서 공부해야 하는데!!!

희연은 숨을 고른다.

희연
그러니까 나. 지금부터 학원 쨀 거야.
유정
뭐?
준석
밖에 선생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어떻게 나가게.
희연
두꺼비집을 내릴 거야. 학원 불이 다 꺼지잖아? 그럼 뒷문으로 달려나가.
준석
온통 깜깜한데 무슨 수로?
희연
네 머리에 쓴 건 장식이냐? (문을 연다) 선생님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희연은 복도에 나가려다가 뒤를 돌아 유정을 바라본다.
희연
야, 최유정. 난 네가 존나 싫긴 한데. 그래도 이건 네 잘못 아냐. 그딴 일로 풀 죽지 마 짜증 나니까.

희연은 대답을 듣기 전에 문을 닫고 나간다.

준석
쑥스러워서 그래.

두 사람은 가방을 챙기고, 헤드라이트를 쓴다. 유정은 희연의 가방까지 같이 챙긴다.

유정
여기서 나가면. 어디로 가지?
준석
넌 어디가 가고 싶은데
유정
글쎄... 잘 모르겠어.
준석
그럼 그냥 걸으면서 셋이서 생각해보지 뭐.
유정
그래, 셋이서.

긴장되는 가운데, 학원이 소등된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헤드라이트를 켠다. 그리고 달려나간다. 학원 밖으로, 학원 밖의 밖으로 온힘을 다해 달려나간다. 막이 내린다.

호들갑 작가소개
물 위를 떠다니는 나뭇조각, 뿌리를 내리려고 바동대고 있다.

 

태그 런 어웨이, 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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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호   2019-04-11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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