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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의 SCENE] 우린 아직 사태의 진상을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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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in 은 극작가가 직접 희곡의 '한 장면'을 소개하는 꼭지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 [극작가의 SCENE] 이라는 코너를 통해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작품의 특별한 순간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 동서양의 고전을 비롯하여 동시대 희곡에 대한 관심과 재미를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
라우디시
너는 세상만사를 도덕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으로 명쾌하게 구별해 낼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구나.
디나
그럼요.
1916년에 작성된 희곡 한 편을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희곡은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요 무대는 “인구 약 만 오천의 자그마한 도시”입니다. 그리고 이 “마을엔 거지도 없고, 도둑 같은 것은 더욱이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이 마을 사람들은 “오늘이 있기까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값진 희생을 치루어” 왔는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을에 이방인 가족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이 이방인 가족은 “전에 있던 마을에서 지진을 겪었”으며 그로 인해 “일가친척은 물론 온 마을 사람들이 몰살을 당했”고, “살아남은 사람은 불과 몇 사람 안 될” 정도의 비극을 경험했죠. 이 불쌍하고 안타까운 이방인은 이 마을에 “신임 건축기사”로 왔으며, “마을의 인구가 늘었기 때문에 교회를 넓히”기 위해 온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방인 가족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평은 많이 안 좋습니다.
라우디시
폰자는 이곳에 부임할 때 가족을 데려왔습니다. 가족이래야 그의 부인과 장모 두 사람 뿐이죠.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한집에서 살지 않고 폰자는 그의 부인과 함께 교외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그의 장모는 시내에서 따로 살도록 한 것입니다.
문제는 여기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확실치 않은 정보들을 가지고 “비상한 흥미를 갖기 시작하고 수군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수군거림은 심지어 “그런 사람은 언젠가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을 거라며 두려워합니다. “도덕적인 처벌”을 해야 한다며 아직 죄의 유무가 밝혀지기도 전에 최소한의 정보들을 가지고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그 누구도 직접 폰자에게 물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결국, 이들은 이런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디나
단 한 명의 부도덕한 이방인에 의해서 우리의 신성한 마을이 더럽혀지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거야말로 부도덕한 일일 거예요.
여기서 말하는 도덕은 무엇일까요. 자신들이 믿고 싶어 하는 것, 자신들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이들에게 있어 도덕일까요? 결국 ‘폰자’와 ‘장모’가 이들 앞에 나타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이들은 더 혼란스러워합니다. “폰자 부인”이 이들 앞에 나타나 “떠나기로 결심”했다며 작별 인사를 하죠. 이들은 “진실을 듣기” 원한다고 말합니다. 폰자 부인이 의미심장하게 말하자 시장은 “부인은 이쪽이거나 저쪽이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폰자 부인은 “뜻대로 생각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떠납니다. 어째서 시장은 이쪽이거나 저쪽이어야 한다고 명령조로 말했을까요, 마치 적인지 아니면 동료인지 확인하는 것처럼 말이죠.

2019년 한 국가에서 일어난 현실 속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약 한 달간 한 인물과 관련된 소식들이 엄청나게 보도되었습니다. 그 인물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관련된 소식들도 덩달아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예정이었으며 한 집단에 대한 변화를 약속했습니다. 임명이 된다면 누군가에게는 적이 될 수 있었고, 또 누군가에겐 동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를 둘러싸고 엄청난 정보들이 보도되었고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뭐가 진짜인지 거짓인지 판단하기도 전에, 정보들의 진위여부나 언급된 죄들의 유무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낙인찍고 처벌에 대한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시장이 폰자 부인에게 “이쪽이거나 저쪽이어야 합니다.”라고 강요하던 것처럼, 대답에 따라 적인지 동료인지 확인하겠다는 어조로 말이죠. 그의 자질을 위해 열렸던 청문회는 재판장으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우린 아직 사태의 진상을 모르”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라우디시
자, 이제 여러분은 비로소 진실을 아셨습니까? 만족하신가요? 그럼...
희곡은 위의 대사를 끝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과연 만족했을까요? 현실에서도 법의 판결이 날 것이고 우리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과연 우리들은 만족할까요? 그렇다면 대중들은 그때 가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요? 희곡 속 마을 사람들이 폰자를 떠나게 했던 것처럼 우리들도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걸까요?
도덕을 외치며 부도덕한 것에 대한 처벌을 강요하던 마을 사람들은 과연 도덕적이었던 걸까요? 100년보다 더 된 희곡 작품 속 마을 사람들의 대답은 뭐였을까요? 과연 그 대답이 지금 2019년도에 사는 우리들의 대답과 얼마나 다를 수 있을까요?

* 인용된 대사는 아래의 판본을 따랐습니다.
  •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 정진수 편역, 「뜻대로 생각하세요」, 『현대의 명작 단막 희곡선 -체홉에서 핀터까지』, 예니, 1994, 144-170쪽.

 

태그 극작가의 SCENE,루이지 피란델로,뜻대로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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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김태현
서울예대 극작전공 졸업, 극작가, <횡단보도에 선 다섯 사람>,
제169호   2019-10-10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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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
현 시국을 꿰뚫어 보는 명쾌한 시각에 감탄을 금하지 못할 정도입니다.사람들은 다만 진실과 정의를 원한다지만 그건 자기들의 색안경에 맞는 걸 따질 뿐이고 본질과 그 대상은 파괴될 뿐입니다.

2019-10-10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