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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작가의 SCENE] 가장 좋은 자리야, 아무도 거기를 못 보는데 거기서는 모두를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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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in 은 극작가가 직접 희곡의 '한 장면'을 소개하는 꼭지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 [극작가의 SCENE] 이라는 코너를 통해 예술가에게 영감을 준 작품의 특별한 순간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 동서양의 고전을 비롯하여 동시대 희곡에 대한 관심과 재미를 한껏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
클라우디오는 문학 수업 시간에 라파 가족에 대한 작문을 제출한다.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의 작문을 읽고 그에게서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다. 헤르만은 작가의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클라우디오가 그 꿈을 대신 이룰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긴다. 헤르만의 아내인 후아나는 매번 글쓰기를 멈추게 만들어야 한다고 경고하면서도 작문을 함께 읽어 나가면서 독자가 된다. 클라우디오의 작문은 현실이다. 그 현실에 헤르만도 함께 얽혀 들어간다. 관찰과 기록을 하던 클라우디오는 라파 가족에게 점점 영향을 끼친다. 이 희곡은 클라우디오가 앞문으로 들어갔다가 뒷문으로 도망쳐 나오기까지를 담고 있다.
클라우디오의 작문이 제목을 정하지도 못하고 결말을 짓지 못한 건, 클라우디오가 맨 끝줄에 앉아 모든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지만, 함께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헤르만은 작문의 제목을 '맨 끝줄 소년'이라 짓고 싶어 했고 클라우디오는 '허수'라 짓고 싶어 했다. 허수는 존재하고 사용할 수 있지만 가짜다. 클라우디오의 작문은 현실이다. 현실 속 모든 등장인물들의 가짜다. 손에 닿을 것 같지만 닿지 못한다.
클라우디오
여기에서 얼마나 많은 창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보이는지 보셨어요? 전 여기 앉아 생각해요. 저 집에서의 삶은 어떨까? 예를 들어서, 저 나이 든 아줌마들 집이요.
헤르만
싸우고 있네. 두 자매가 유산을 놓고 말다툼하는 건가?
클라우디오
두 레즈비언이 헤어지려는 거 아닌가요?
헤르만
두 자매가 시골집을 놓고 싸우는 거야. 금발 머리는 팔고 싶어 하고, 검은 머리는 말도 안 된다고 하고, 두 사람은 머릿속에 과거를 던지고 있는 거야.
클라우디오
두 레즈비언이에요. 30년간 지긋지긋하게 같이 살다가 금발 머리 아줌마가 류마티즘 여의사랑 사랑에 빠지게 됐어요. 검은 머리 아줌마가 말하는 거예요. “하지만 내가 너한테 소개해 줬잖아.” 손들을 잘 보세요. (흉내 내면 손을 움직인다.) 하지만 내가 너한테 소개해줬잖아! 이제 알았다, “왜 내가 병원에 따라가는 걸 싫어했는지!”
헤르만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거지. (흉내 내며 손을 움직인다.) “우리 아버지 집이야! 그걸 지켜 내려고 얼마나 애쓰셨는데!”
클라우디오
3층 오른쪽 집일 거예요.
헤르만
잊어버려, 저 사람들한테 수학 선생님이 필요할 거 같지는 않다.
클라우디오
뭔가는 필요할 거예요. 들어갈 방법은 항상 있어요. 어떤 집이든 들어갈 방법은 항상 있어요.
(침묵. 헤르만은 클라우디오에게 파일을 건네준다.)
클라우디오와 헤르만의 마지막 대화 중 일부분이다. 클라우디오는 작문을 완성하지 못했고 더 이상 라파 가족의 집에 갈 수 없다. 클라우디오는 학교를 그만두고 후아나에게 접근해, 또 다른 위험한 작문을 쓰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헤르만은 클라우디오를 만난다. ‘계속’될 것만 같았던 작문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헤르만과 클라우디오는 나이든 아줌마들의 집을 보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들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나이든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내가 발견한 것은 상상이다. 나이든 아줌마들의 집에 들어가 관찰을 하기 전에 이들은 상상하면서 허구의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클라우디오는 라파가 부모님이 학교에 찾아온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에 매혹됐고 상상했으며 알고 싶어 했다. 클라우디오는 자신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으며 무관심한 아버지가 있다. 클라우디오는 철저하게 사회에서 버려진 존재다. 헤르만은 그런 클라우디오에게 사랑과 관심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켰다.
헤르만
네가 안 하면 분명 내가 하겠지. 좋은 결말을 위해 필요한 두 가지가 뭔지 아니? 독자가 이렇게 말해야 해. “이건 예상하지 못했어, 하지만 다른 방식도 안 되겠다.” 이게 좋은 결말이야. 필연적이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거. 그럴 수밖에 없으면서 반전이 있는 거. 넌 그걸 찾아야 해. 독자에게 힘을 주거나 독자를 상처받게 하는 결말. 감히 그렇게 못하겠다는 거야? 감히 끝내지 못한다는 거야? 내가 하는 게 낫겠어?
헤르만은 그동안 클라우디오가 썼던 작문이 담긴 파일을 클라우디오에게 건네준다. 작문은 문학작품이 되지 못했다. ‘라파 가족’ 자체가 헤르만과 클라우디오 관계의 중요한 매개체다. 헤르만과 클라우디오는 스승과 제자이면서 아버지와 아들 같다. 아버지는 끝내 아들에게 폭력적으로 굴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증오하며 떠난다. 헤르만의 예언대로 필연적이면서 예상하지 못했으며 독자를 상처받게 하는 결말을 썼다. 아무리 디테일하고 똑똑한 사람도 누군가를 구원하고 이용하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이것을 착각할 때 항상 끝은 처참하게 ‘끝’난다.
*인용된 대사는 아래의 판본을 따랐습니다.
후안 마요르가(Juan Mayorga,1965년∼), 김재선 옮김, 『맨 끝줄 소년』,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4

 

태그 맨 끝줄 소년, 손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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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손성연 극작가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졸업, 2018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헤어드라이어>와 2017 안산독백만인보 <연극적이고 싶지 않다> 작가로 참여. austinsohn2@naver.com
제172호   2019-11-21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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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째 줄에 '맨 끌줄 소년'이라고 오타가 있는 듯 해요! 최근에 맨 끝줄 소년을 관람하고 온 지라 재밌게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2019-12-16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in 에디터
피드백 감사합니다^^ 2020년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1-06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