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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폈다 지는 사이

박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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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이 폈다 지는 사이

    박다솔

    semjock@hanmail.net


    때·장소·인물

    벚꽃이 만개한 봄의 어느 때,
    고가도로 위로 지하철이 지나가는 곳,
    그곳의 동네 어귀에 서 있는 벚나무 아래, 긴 의자가 하나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 만개한 벚나무 아래,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아 있다.

    여자의 손에는 커피가 절반쯤 남은 투명한 테이크아웃 커피 잔이 들려져 있고
    남자의 손에는 다 마신 뒤에 찌그러트린 탄산음료 캔이 들려져 있다.

    남자와 여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 시선을 옮겨 여자를 쳐다보다가 잠시 주변을 살핀다.


    남 자왜 여기서 보자고 했어?
    여 자여기, 궁금해 했잖아.
    남 자내가? 여기를 왜?
    여 자아니었어? 왜, 매년 봄이면, 내가 3호선 타고 가다가 말하던 곳.
    남 자여기, 옥수역? 네가 뭐라고 했었는데?
    여 자나한테 얘기 들을 때마다 질투 했었는데, 이젠 기억도 안 나는구나?
    남 자아-
    여 자기억나?
    남 자아니.
    여 자됐어, 그럼.

    사이

    남자, 머리 위의 벚꽃을 쳐다본다.
    여자, 남자의 시선을 따라가 벚꽃을 본다.

    남 자벚꽃이 한창이네. 너, 벚꽃 좋아했잖아.
    여 자지금도 좋아해. 과거형으로 물으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네.
    남 자왜 그렇게 벚꽃을 좋아해?
    여 자이유야 찾으면 많지. 예쁘잖아. 바람 불 때 눈처럼 흩날리는 것도 좋고. 아주 잠깐 폈다 지는 것도 좋아.
    아, 엄마가 나 임신했을 때 벚나무가 꿈에 나왔다는 얘길 듣고 나서부터 더 좋아하게 됐나? 아니, 잘 모르겠다.
    뭐, 밤에 가로등 아래에서 봐도 기묘하고, 좋아.
    남 자난 네가 나한테 벚꽃 폈다 지는 모습이 꼭 너 연애하는 모습이랑 닮았다고 말했던 것만 기억나는데.
    여 자(웃음)
    남 자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여 자우리가 뭐 무슨 일 있어야 보는 사이였나. 서운하네.
    남 자서운하긴. 꿈 얘기는 처음 듣네. 어머니는 잘 지내셔?
    여 자응. 너랑 헤어졌다니까 박수 치고 좋아하더라. 너, 되게 싫었었나봐. 사귈 때는 한 마디도 안하더니, 웃기지.
    남 자(침묵)
    여 자요새는 뭐 해? 넌 어떻게 연락을 한 번 안하냐. 다른 구남친들은 그렇게 연락들을 한다던데.
    남 자(침묵)
    여 자바빴나봐?
    남 자술 마시고 취해서 너네 집에 갔었어. 막 정신없이 문을 두드리는데, 어머님이 나오시더라. 그 얘기, 안하시디?
    여 자뭐? (소리 내며 웃다가) 와- 우리 엄마가 너 진짜 싫어했나보다. 그런 얘기 안하던데. 그게 언제야?
    남 자(침묵)

    여자, 남자의 표정을 바라보고 옅은 웃음만 띤다.

    사이

    여 자그거, 가져왔어?
    남 자응. 여기

    남자,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여자에게 건넨다.
    여자, 반지를 손에 넘겨받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여 자고마워. 여태 가지고 있었네. 솔직히,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어.
    남 자응. 아직. 뒤지니까 나오더라.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여 자너, 이거 어떻게 네가 갖게 됐는지 기억나?
    남 자응. 처음으로 네 방에 놀러갔을 때, 네가 나 줬잖아.
    여 자아냐, 네가 너무 예쁘다면서 갖고 싶어 해서, 너한테 거의 빼앗기듯이 준거였어.
    남 자그랬나.
    여 자응.
    남 자근데 그건 왜? 갑자기.

    사이

    여 자여기, 벚나무 예쁘지 않아? 나 여기서 꼭 찾고 싶은 벚나무가 있어.
    남 자벚나무가 다 똑같지 뭐.
    여 자저기 아파트 보여? 한 2-3층쯤. 저 집은 지금 창문 열면 벚나무 가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어쩌면, 가지가 베란다로 들어갈지도 몰라.
    남 자그러겠네.
    여 자근데, 저 나무는 내가 찾는 나무는 아냐. 내가 찾는 벚나무는 맞은편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어야 되거든.

    남자, 여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여자의 눈앞으로 손바닥을 흔들어 보인다.

    남 자야, 간혹 벚나무에 홀리는 사람도 있대. 너, 지금 좀 그래 보인다.
    여 자그래 보인다니, 나쁘지 않네.

    남자, 여자를 의아하게 바라본다.
    여자, 말아 쥔 손을 쳐다보며,

    여 자이거 네가 가져갔을 때, 그 날 밤에 조금 울었었어. 너한테 말은 못하고, 얼마나 속상했다고.
    남 자왜? 너 설마, 그거 구남친이 준거였냐.
    여 자네가 구남친이거든.
    남 자어쩐지 좀 남자 것처럼 생겼다 싶었어.

    사이

    여 자주운거야, 여기 왔다가.
    남 자여기서?
    여 자응. 여기는 아니고, 이 동네 벚나무 아래서.
    남 자난 지금 네가 무슨 말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가 정상인거지?
    여 자비정상이면 뭐 어때.
    남 자그거, 왜 돌려달라고 한 거야?
    여 자(침묵)
    남 자말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여자, 남자를 바라보다가, 머리 위의 벚나무로 시선을 옮긴다.

    남 자나, 갈까? 그거 돌려달라고 연락한 거 맞지?

    사이

    여 자내가 너한테 첫사랑 얘기 자주 했었지? 그 사람은 내 이름도 모르고, 나랑 얘기도 나눠본 적 없다고. 내가
    일 년 동안 열병 앓듯 좋아했다고.
    남 자어, 약수역.
    여 자아니, 옥수역. 여기.
    남 자아-
    여 자그 사람이, 죽었대. 4년 전에. 내가 너 만나기도 전에.

    남자, 놀란 듯이 여자를 바라본다.

    여 자이거, 내가 그 사람 짝사랑 할 때, 얼굴이라도 마주칠까 싶어서 이 동네 배회하다가 주운거야. 그 때, 내가 그 사람
    미니홈페이지를 자주 들어갔었거든. 그 사람이 자기 집 베란다에서는 벚나무를 만질 수 있다고 글을 올렸더라.
    그거 읽고 얼마 안 되서 여기 왔었어. 옥수동. 그 사람이 여기 살았거든.
    남 자그거, 그 사람거야?
    여 자아니. 아마, 아니겠지?

    남자, 여자를 바라본다.

    여 자이거 주었을 때, 좋아했었어. 어쩌면, 그 사람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
    남 자순진했네-
    여 자순수했다-
    남 자그건, 어떻게 알았어?
    여 자뭐? (사이) 아, 죽은 거?
    남 자응.
    여 자올해, 벚꽃이 유난히 만개했더라. 갑자기, 그 사람 생각이 나서 그 사람 미니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누가 글을
    올려놨더라고. 나, 그 주소 여전히 기억하더라.
    남 자안됐네.
    여 자난 그런 줄도 모르고, 너 만날 때 지하철로 옥수동만 지나가면 그렇게 아련해 했었는데. 못 이룬 사랑 마주치는
    것처럼.
    남 자못 이뤘잖아. 아련하지, 첫-사랑.
    여 자아, 그래, 너, 그, 성당 누나처럼? (여자, 웃는다.)
    남 자아, 응. (남자, 웃는다.)
    여 자이제 곧 벚꽃도 질 테고, 다 사라져버렸고, 그런데 생각나서, 보고 싶어서. 그 땐, 지금보다 더 어렸으니까. 여기서
    이걸 다시 보고 싶었어.

    여자, 남자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여 자고마워. 가져다줘서.

    남자,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옮긴다.

    남 자됐어, 뭐. 어려운 일도 아닌데. 근데, 난 벚꽃 싫어했어. 지금도 싫어해. 벚꽃 떨어지는 것도 싫어.
    진부해서. 벚꽃 폈다 지는 거 볼 때, 네가 나한테 했던 말도 가끔 머리에 맴돌아.
    우리도 그렇게 금방 떨어졌었나. 이상하리만큼 가득 피어나는데, 너무 짧고, 어느새 변해 있잖아. 싫어.
    여 자하지만, 예쁘잖아.
    남 자글쎄, 그런가. 아- 벚꽃, 한 철 장사, 드디어 끝나가네.
    여 자아쉬워-

    남자와 여자, 동시에 벚꽃을, 서로를, 그들이 앉은 옥수동을 천천히 살핀다.
    남자와 여자의 시선은 여러 곳에 머물고, 그들의 시선이 교차한다.

    사이

    여 자좀 걸을까?
    남 자그래. 오랜만인데, 좀 걷자.

    남자, 일어나 여자를 쳐다본다.
    여자, 벤치에 앉은 채로 머리 위의 벚나무를 잠시 쳐다본다.
    남자, 여자를 바라보다가 먼저 걸어 나간다.

    여자, 손에 쥐고 있던 반지를 의자 아래에 가만히 놓는다.
    여자, 일어나 남자의 곁으로 가 함께 걸어 나간다.

    끝.

작가소개

 

태그 벚꽃, 사이, 박다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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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 44호   2014-09-01   덧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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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꼬꼬
박다솔 작가의 다양한 활동을 늘 응원합니다!!!!!!!

2014-09-05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수진
따뜻하고 맑은 감성을 가진 박다솔씨~희곡 잘 보았습니다 ^^

2014-09-05댓글쓰기 댓글삭제

회사원
박작가님!! 앞으로 기대겠습니다^^ 감성 넘치는 프랑스에서는 더욱 좋은 글 많이 써주세요!!

2014-09-06댓글쓰기 댓글삭제

파운드
박작가님 희곡 잘봤습니다! 여운이 따뜻하게 남네요. 더 좋은 글 기대할게요!

2014-09-07댓글쓰기 댓글삭제

stage1st
벚꽃이 폈다 지는 사이가 인생에서 몇 번이나 올까요^?^ ......걸어 가다보면 알 수 있을까요^^ㅋ

2014-09-09댓글쓰기 댓글삭제

서은지
좋은 작품 잘 봤습니다^^ 늘 기대되는 십분희곡이네요!

2014-10-12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