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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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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알리는 암탉의 우렁찬 울음소리 들린다.
외박한 채빈이 현관문 앞에 선다.

채빈
네, 이제 집 앞이에요. 선배님도 피곤하시죠?
아 - 벌써부터 어떻게 오빠라고 해요. (사이) 삐진 거예요?
알겠어요! 그럼… 오-빠. 아, 몰라. (수줍) 굿나잇-!

전화를 끊고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현관문 문고리를 잡는다. 멈칫한다.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

채빈
잤어? 미안. 야. 나 어젯밤에 너네 집에서 잔거다.
(사이) 우리 엄마가 혹시 전화하면 너랑 있었다고 해.

전화를 끊는 채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문고리를 잡는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 들린다.

승구
학교 가니?

술이 좀 된 승구 등장

채빈
(당황)아빠!
채빈
일찍 가네.
채빈
응.

채빈, 다시 현관문 등지는데.

승구
잠깐!
채빈
(돌아본다)
승구
학교를 가는 거냐?
채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승구
화장이 다 번졌어
채빈
아직 서툴러서.
승구
아.
채빈
다녀오겠습니다.
승구
잠깐!
채빈
또 왜?
승구
오늘 토요일인데?
채빈
아, 진짜?

승구,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채빈
내 정신 좀 봐. 착각했나봐.
승구
(빤히 본다)
채빈
아, 이 바보.
승구
외박했니?
채빈
또 왜?
승구
응…?

승구, 채빈에게 코를 갖다 대고 냄새를 맡는다.

승구
술 냄새도 안나. 담배 냄새도 안나.
채빈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웠으니까
승구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고 밤새도록 뭐했니?

사이

채빈
과제…?
승구
과제! 그렇지. 입학식 날 교수님께서 과제를 내주셨다는 거지?
수업도 안하고 과제부터. 심지어 밤을 세야 할 정도로 빡센 과제를!
그렇다면, 밤새도록 우리 따님이 하신 과제는 무엇일까?
레포트 몇 장으로 작성해 오라시디?
채빈
그게 그러니까.
승구
왜, 아직 마땅한 구라가 안 떠올라?
채빈
사실은 유정이네서 놀다가 잠들었어.
승구
(본다)
채빈
진짜야!
승구
(의심)
채빈
전화해볼까?
승구
(자신의 휴대폰 주며) 응. 해봐.
채빈
아빠 진짜면 어쩌려고 그래?

채빈, 억울하다는 듯 열연하며 번호를 누른다.
신호가 가는 동시에 휴대폰 빼앗는 승구.

승구
유정이냐? 자는데 깨워서 미안하다. 채빈이가 아직 안 들어와서…
아아. 옆에서 자고 있어? 응. 그래. 그냥 영원히 쭈욱 재워라.

한참동안 서로를 쳐다보는 부녀.

승구
그러니까 우리 따님께서 외박을 하신 후, 자고 있는 친구를 깨워
말을 맞추고 태연히 들어가서 마치 인간인지라 실수로 외박한 것처럼
엄마님께 말씀을 드리겠다?

채빈, 애교 있게 웃어본다.

승구
너 이 녀석 이 시간까지 뭐했는지 솔직하게 얘기해.
채빈
말해봤자 이해 못하잖아.
승구
들어보고 판단할게
채빈
솔직하게?.
승구
솔직하게
채빈
정말 솔직하게?
승구
(버럭) 얼른 말 안 해?
채빈
...
승구
육하원칙으로다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채빈
에라, 모르겠다…

사이, 둘 사이의 묘한 긴장감.

승구
언제
채빈
어젯밤
승구
어디서
채빈
자취방에서
승구
맙소사 (심호흡) 무엇을

한참 고민하는 채빈.

채빈
솔직하게?
승구
솔직하게!
채빈
첫 경험을…

뒷목 잡는 승구.

승구
어떻게
채빈
차근차근… 배워가며?

승구, 주저앉는다.

승구
누구랑?!
채빈
선배님… 아니, 이제는 오빠…!
승구
왜…?!
채빈
왜?

고민하는 채빈.

채빈
그것은 마법 같은 거야. 누군가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이 내 몸이 그렇게 마법에 걸린 것처럼 자석처럼 이끌려갔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리수리 마하수리 아브라카타브라 뿅!

"뿅" 하는 순간 옆에 사정없이 채빈을 쥐어박는 승구.

승구
마법 같은 거?! 그래 이것아 - 요술 봉으로 실컷 맞고 어디 마법사 세계로 떠나봐라.
채빈
왜 때리는데! 솔직히 말하라며!

승구를 막는 채빈.

채빈
아빤 뭐야?
승구
아빤 뭐냐니? 이 녀석이 외박하고 들어오더니 정신 줄을 딴 데 묶어두고 왔나
채빈
아니, 아빤 왜 이제 들어오시냐고요.

채빈, 승구에게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채빈
술 냄새도 나고, 담배 냄새도 나고, 여자 냄새도 나는 거 같은데?
승구
너랑 아빠랑 같냐?! 아빤, 사회생활 하잖아.
채빈
고등학교 때, 학교는 제2의 사회라고 배웠어. 사회생활 잘하려면 학교생활을 잘해야 한다 했다고.
나도 아빠처럼 사회생활 잘하려고-
승구
남자랑 외박을 했다?
채빈
그렇지, 가 아니라! 아! 아빠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
승구
어찌됐건, 너의 첫 외박을 옳다구나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일단 들어가서 보자.

문고리를 잡는 승구. 멈칫한다.

승구
둘이 여행 갔다 왔다고 할까?
채빈
에?
승구
우리 딸, 수능 끝나서 대학 갔는데 기특해서 바람도 쐴 겸 아빠랑 둘이 여행 갔다 왔다고 할까?
채빈
참나, 사회생활 좀 한 게 집 앞에선 두려워?
승구
둘이 그냥 동네에서 밤새 술 먹었다고 할까? 너 요새 무슨 고민 같은 거 없냐?
채빈
없어.
승구
진짜 없어?
채빈
없어.
승구
그럼 뭐라고 하지?

깊은 한숨을 내쉬는 두 사람. 사이,

채빈
난 유정이네서 놀다가 잠든 걸로 할 거야
승구
그럼 나는?
채빈
아빤 아빠 나름대로의 이유를 만들어
승구
상가 집 갔다 왔다고 할까?
채빈
진부해
승구
진부해?
채빈
아, 몰라. 나는 대충 넘어갈 생각이니까 아빤 알아서해.

한참 고민 중인 두 사람 사이로 동환이 태연하게 지나간다.

동환
(승구에게) 아빠 지금 출근해? (채빈에게) 학교 가냐?

아무렇지 않게 문고리를 잡고 열려는 동환.

승구, 채빈
안 돼!
동환
왜?
채빈
어디 갔다 오는데?

동환에게 가까이 가서 냄새를 맡는 승구와 채빈.

승구
담배 냄새
채빈
술 냄새
승구
여자 냄새
채빈
싸구려 바디클렌저 냄새까지
승구
완벽해
채빈
완벽한
동환
완벽한?
채빈
범죄야

채빈의 머리통을 쥐어박는 동환.

동환
뭐야, 새삼스럽게. 여자 친구랑 여행 갔다 온다 했잖아.
승구
여자 친구랑
채빈
여행?
동환
응.

다시 문고리를 잡는 동환. 다시 동환을 막는 두 사람.

동환
왜 그러는데. 나 피곤해.
채빈
우린 더 피곤해
동환
뭐야. 두 사람
채빈
여자 친구랑 외박하고 아침에 들어가면서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냐고.
동환
엄마한테 며칠 전부터 말했잖아. 여자 친구랑 2박 3일로 여행 다녀온다고.
채빈
그랬더니 엄마가 "다녀오세요, 아드님." 했어?
동환
어! 아빠도 다녀오라고 십 만원 줬잖아
채빈
돈까지 줬어? 외박을 하는데 돈까지? “아이고. 우리 아드님 외박 파이팅 하십쇼.” 하면서?
승구
그야, 우리 장남 기죽을까봐 그러긴 했지
채빈
뭐야, 완전 불공평하잖아.
동환
야, 넌 여자잖아.
채빈
왜 오빠는 돈까지 줘가면서 외박 시켜주고 난 이렇게 절절매야 돼?
동환
너 외박했냐?
채빈
그래! 했다!
동환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채빈
아빠도 했는데?
동환
아빠는 사회생활 하잖아 인마. 너랑 아빠랑 같냐?
승구
아빠랑 너랑 비교하면 안 된다.
동환
추워. 둘이 알아서 해. 나 먼저 들어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동환.

채빈
몰라. 나도 들어가서 따질 거야! 불공평하다고.

채빈, 따라 들어가려는데. 승구가 막는다.

승구
너 지금 아주 잘 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나야 가끔 있는 일이니까.
원래 저런 사람이지 하면서 넘어갈 수 있지만, 첫 외박이 더 무서운 거다.
너. 나 엄마랑 결혼하고 첫 외박 했을 때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해.
무덤까지 따라가는 게 첫 외박이야. 이 사회초년생아.

잠시 후, 비장한 태도의 채빈.

채빈
더 이상 피할 생각만 할 수는 없어! 아빠. 우린 한 배를 탄 거지?
승구
우리가 한 마음이 되면!
채빈
엄마 한명쯤은 이길 수 있을 거야.
승구
너 잘해야 된다! 아빤 죽어도 우리 딸 편 할 거야!
채빈아빠, 아빤 우리 집안의 가장이며 자랑스러운 나의 기둥이야! 알지?! 기죽지마 절대!
승구
우리 딸, 아빠가 정말 사랑한다!

문고리를 힘차게 잡고 여는 부녀. 대충 씻고 나온 동환이 두 사람을 본다.

동환
엄마 없는데?

막.

호들갑 작가소개
강소진은 1988년 3월 14일 4kg이라는 엄청난 무게로 태어났다. 무게만큼이나 풍부한 감수성으로 유아기를 보내고, 청소년기에 쓴 기승전결 뚜렷한 반성문을 계기로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고전문학 선생님의 권유로 서울예술대학 극작과에 지원. 2007년 현역으로 입학. 여전히 작가를 꿈꾸고 있다. (편집위원_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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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52호   2014-09-19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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