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힘줄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등장인물
기림 27세 여자
민주 27세 여자

무대 위에 두 여자가 서 있다. 한 사람이 먼저 발걸음을 떼 무대 한 가운데로 나선다.

기림
이 길로 한번 가볼까?
민주
(길을 걷다 멈춰 서서 상점 간판을 보며) 야 근데, 토스토가 뭐야?
기림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토스토? 그게 뭐야?
민주
(턱을 힘껏 치켜들고는) 저기 간판에 토스토라고 적혀 있어. (상점을 자세히 살펴보고는) 토스트 가게네.
토스트 팔면서 (입을 한껏 오므리며) 토스토가 뭐야. (고개를 저으며) ‘토’가 두 번이나 들어갔어.
기림
토스트 가게라고, 다 정확히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히 발음 하며) 토!스!트!하면 재미없잖아.
세상에 (입을 한껏 오므리며) 토스토 하나 정도 있어도 괜찮지 않아?
민주
(미간을 찌푸리며) 난 ‘토’자 들어 간 게 이제 정말 싫다. 진짜 ‘토’가 나온다. ‘토’익, ‘토’스, ‘토’플.

무대의 조명이 점점 어두워진다. 무대의 바닥에 기림이 먼저 앉는다. 바로 옆에 민주가
자리에 앉는다. 기림과 민주 주변에 조명이 은은하게 들어온다.

기림
(무표정으로) 토요일은 좋은 거.
민주
요즘 주말엔 좀 쉬어?
기림
(무표정으로) 쉬는 날도 있어
민주
(기림의 얼굴을 살피며) 토요일은 쉬는 날인가?
기림
(무표정으로) 나는 모르지. 그건 사장님만이 아시는 것
민주
(기림의 얼굴에서 시선을 거두면서) 나도 주말에도 일할 수 있겠지? ‘토’나오는 ‘토’익, ‘토’스,
‘토’플 점수 잘 나오면, 나도 너처럼 야근도 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할 수 있겠지?
기림
(하늘을 올려다보며) 또 금방 한밤중이다. 뭘 했다고 또 밤이야. 매일 밤이 오네. 토스트 먹고 갈래?
민주
(기림을 흘겨보며) 안 먹고 싶어
기림
관문을 하나씩 넘을 때마다 뭔가 엄청 새로울 것 같은데, 또 같고 그렇더라.
(옅은 미소를 띄며) 안면근육 팽창할 정도로 좋은 것은 옛날에 너랑 놀 때 그 이후로는 잘 없네.
그 이후로는 그냥 견딜만해 나쁘지 않아. (생각에 잠긴 얼굴로) 견딜만해. 나쁘지 않아.
(반복해서) 견딜만해. 나쁘지 않아.
민주
(기림의 말을 따라하며) 견딜만해… 나쁘지 않아… (잠시 침묵) 기림아 나는 지금 견디기가 힘들어.
그리고 매우 나쁜 상황이야. 기림아 나는 견딜 수가 없어. 나는 매우 나쁜 상황이야.
나도 그냥 너처럼, 그리고 누군가처럼 (한숨 쉬며) 그냥 남들처럼 회사가고 싶어.
나는 너처럼, 그 누군가가 되고 싶어. 에디슨은 천재니까 아직도 TV에 나오는 거 아니냐?
나는 그냥 남들처럼 살고 싶어. 그리고 그냥 ‘견딜만해, 나쁘지 않아’ 그런 말을 하고 싶어.
기림
(잠시 침묵) 너도 곧 야근에 죽는 소리에 상사 욕지거리에 전화통이 불나겠지.
친구야, 하는 김에 이것저것 많이 배워놔. (잠시 침묵) 들어가면 또 시작이야.
세상에 잘난 것들 다 모여 있어. (사이) 엄마는 사는 게 재미있을까?
민주
엄마는 아빠 밥 줘야 되고, 아빠는 살아야 되고, 언니는 시집은 한 번 가보고 죽어야겠다고.
개는 밥 주니까 밥 먹고 살지.
기림
넌 내일 당장 죽는다면 오늘 뭐 할 거 같으냐?
민주
우리 내일 안 죽어. 우리 내일 죽어야만 할 때 생각해보자. (하늘을 올려다보며) 또 금방 한밤중이네.
뭘 했다고 또 밤이 왔을까! 하루는 짧은 데 인생은 왜 이렇게 길까? 들어가라.
못 다한 말들은 전화로 하자구나.

무대 위에 의자 2개가 놓여 있다. 민주가 의자 하나에 앉는다. 기림도 의자에 앉는다.
서로 등을 돌리고 앉아 있다. 민주가 휴대 전화 속 달력을 들여다본다.
지난 일정들을 넘겨보다가 달력이 작년으로 넘어간다.
버튼을 바꿔 액정에 통화 목록을 띄운다. 지난 통화목록을 내려 보다가 기림의 번호를 누른다.

민주
(휴대전화기의 신호음이 멈추자마자) 오늘 만날 수 있는 거야? 약속 날인데 문자도 하나 없고,
만나는 거야 안 만나는 거야?
기림
오늘이구나, 한 달이 이렇게 지났네.
민주
그니까, 만나는 거?
기림
지영이는 요새 뭐하냐? 너랑 연락 되?
민주
다들 알아서 잘 살겠지. 너랑 나랑 잘 살고 있는 것처럼.
기림
(침묵) 누가 잘 살고 있어?
민주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너!
기림
야…
민주
너는 일하지, 일을 하지. 일도 하지. 일까지 하지. 일만 하지. 일! 일하는 사람, 잘 사는 사람.
기림
야…
민주
그니까, 만나는 거?
기림
오늘이 무슨 요일이지?
민주
야! 묻는 말에 대답 좀 해라. 짜증나려고 해. 우리 만나는 거니, 안 만나는 거니?
기림
(침묵) 나, 그만 할까?
민주
뭘? 뭘 그만 해?
기림
(분명한 어조로) 일
민주
(의아한 목소리로) 일을 그만해? 그만 둔다고? 너 무슨 일 있었어?
기림
일이야 늘 많지. 그냥 전화로 하기 힘드네. 만나서 얼굴 보면서 얘기할게.
민주
그러니까 무슨 일 있었냐고? 너 어차피 지금 못 만나잖아. 그냥 전화로라도 얘기해주면 안 되겠니?
기림
어떻게 얘기를 해야 될까?
민주
한 달 치구나. 보따리일거야. 얘기가. 어디서부터 풀어야 될지를 모를 거야.
그리고 너는 분명하게 말을 안 할 거야. 그렇지?
기림
민주
십 만원 있으면 가장 하고 싶은 거 있어?
기림
뭘 하지? 부산?
민주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기림
서점엘 통 못 갔어. 광화문을 계속 지나치기는 했는데
민주
어젯밤엔 무슨 꿈 꿨어? 기억나?
기림
기억 안나
민주
강아솔 공연하더라. 이번 달 말에 해. 나 딱 너 생각나던데 예매했어?
기림
이번 달 말? 이번 달 말… 이번 달 말에…
민주
뭐 약속 있어?
기림
아니 없어. 아니 몰라. 내 시간은 내 것이 아니거든. 그래서 예매 같은 것 안 해.
약속 제일 잘 지키는 거, 그거 약속을 애초에 안하는 거야. 그럼 돼.
민주
기림. 너 요즘 가장 재미있었던 일은 뭐였니?
기림
재미? 재미… (수화기 사이로 침묵이 이어진다)
민주
음, 그러니까 최근에 크게 웃었다거나 어떤 일이 오래도록 잊혀 지지 않는다거나,
‘페이스 북’에서 무엇인가 ‘좋아요’를 눌렀다거나 그런 거 없냐고.
기림
(침묵) …
민주
야! 넌 나 어떻게 잘 지냈는지 안 궁금하냐?
기림
잘 지냈니?
민주
아니 엄청 못 지내지. 여기서 이렇게 아르바이트 전전하느니 호주로 뜰까도 고민.
기림
야, 호주가도 외국인 노동자야 우린.
민주
외국인 노동자는 그래도 앞에 ‘외국’이 붙잖아. ‘외국’물도 한 번 먹어보고, 얼마나 늘까 싶긴 하다만은 ‘외국’어도
배우고. 얼마나 좋냐. 여기 있어도 그냥 노동자야. 그냥 노동자. 나 손등에 힘줄 튀어 나왔어. 노동자의 훈장 같은
거지. 회사 근처 커피숍의 압박. 이력서에 이 힘줄 쓰는 칸도 있었으면 좋겠다. 힘줄 튀어나오게 열심히
산 거 쓰는 칸.
기림
내가 알지. 힘줄 튀어나오게 열심히 산 거. 넌 요즘 재미있었던 것 없었어?
민주
면접관들이 다들 재밌더라. 요즘 이력서는 월세인지, 전세인지까지 적어야 돼. 정답은 호주인 듯하다.
한국에서 한국인답게 살기 참 어렵네.
기림
한국인은 대단해
민주
너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건 뭐냐? 그냥 지금 당장 그냥 어떤 생각도 하지 말고, 내일 생각도 하지 말고,
지금 딱 떠오르는 게 뭐냐?

기림이 전화기를 든 채 뒤를 돌아본다. 앞에 민주의 등이 보인다. 민주의 등을 한참 바라본다.
무대 위 조명이 꺼진다.

끝.

호들갑 작가소개
<힘줄>을 집필한 조영주는 금강산 개발 계획이 최초로 발표되고, 가수 박남정이 정통 댄스곡으로는 처음으로 5주 연속 가요톱텐 1위를 달성한 1989년 태어났다. 서울 중랑구에서 26년째 자라오면서, 개발 정책에 의해 도시의 풍경이 변모하는 양상을 지켜보았다. 문화콘텐츠학과에 재학하면서 시, 소설, 시나리오를 창작하는 일을 해오다가 인도여행 이후, 스스로 극작, 연출, 출연까지 감행한 <사막의 노래>(2012)라는 작품으로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연을 올렸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는 프린지 네트워크에서 기획자로 열렬히 활동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우물쭈물 밝히고 있다. 창작의 길을, 오락가락 사뿐사뿐 수줍게 걸어나가는, ‘영’원한 꿈의 ‘주’인공, 조영주 작가를 주목하시라. (편집위원 정진세)

 

태그 힘줄, 조영주

목록보기

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53호   2014-10-02   덧글 4
댓글쓰기   
덧글쓰기

경민
힘줄 새기며 살아가지만 결국엔 아픈 현실이라는게 우리 모두의 얘기인 것만 같아요^^
저도 저자신에게 무엇이 하고 싶은지 되물어보게 되네요

2014-10-02댓글쓰기 댓글삭제

긴중
우리의 이야기가 담백하고도 재밌게 담겨있는거같아요. 공감되서 짠하기도 하고ㅠ 재밌게 잘봤습니다. :D

2014-10-08댓글쓰기 댓글삭제


요즘 청년실업문제를 재치있게 표현했네요. 모든 청년들이 원하는 분야에서 힘줄 불끈하며 일하는 날이 빨리오길~

2014-10-09댓글쓰기 댓글삭제


제 나이 또래가 공감할 수 있는 현실적인 내용이라 많이 와닿네요. 맨 마지막 문구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2014-10-13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