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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학 교수를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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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유미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 현재 심리학 연구소 연구원.
대학원 시절 냉정하고 이성적이다.
미아 30대 후반의 이혼 여성. 현재 작은 출판사를 운영할 예정.
대학원 시절 여리고 소심했다.
술이 30대 후반의 미혼 여성. 현재 리서치 회사에서 분석심리 분석팀에 근무 중
대학원 시절 자유분방하고 거침없었다.

장소
곧 미아의 출판사 사무실이 될 곳.


어느 저녁.

무대
무대 중앙에 원형의 테이블, 세 개의 의자.
무대 왼쪽 구석에 놓인 조그만 커피 테이블에는 커피포트와 컵들,
커피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그녀들은 같은 심리학과 대학원 시절 인간학 교수 밑에서 같이 연구를 했다.
미아, 유미, 술이는 담당교수, 인간학이 죽자 대학원을 나와 각자의 길로 간다.
유미는 유학을 거쳐 권위 있는 심리학 연구소에 들어갔다.
술이는 국내에서 심리학 전공을 살려 인터넷 심리와 관련된 작은 연구소를 만들었다.
미아는 대학원을 그만 둔 후 결혼을 하였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아 결국 이혼했다.

장면은
6년간 연락이 없던 미아가 출판사를 개업한다고 연락이 오자 유미와 술이가 함께 미아의 출판사 개업을 축하하러 온다. 아직 정리가 안 된 출판사 사무실을 보며, 대학원 시절 전공 서적이 가득 쌓인 자신들의 연구실을 회상한다. 학교 시절처럼 가볍게 맥주를 마시며 지나간 얘기를 꺼낸다. 그리고 인간학 교수가 죽기 전에 실패한 치료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심리 치료 중 살해당한 보조자의 죽음을 자살로 위장시킨 것에 대해…

술이
자살? 난 인간학 교수를 죽어서도 용서할 수 없어. 넌 정말 용서가 되니? 그 여자 시체에… 하, 정말…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어떻게 죄 없이 죽은 사람 몸에 칼자국을 내? 그래서 얻은 게 뭐야? 왜 그렇게까지 한 거야? 너희들이 안 한다 했으면 인간학이 혼자서 메스 들고 했을 거야.
유미
책임져야 했으니까.
술이
무슨 책임?
유미
그 일에 대한 책임.
술이
너 그러는 거 집착인 거 알아? 누구나 다 인정받고 싶어 해. 너도, 나도 미아도. 그 교수한테 인정받으려고, 관심받으려고 얼마나 발버둥 쳤니? 그런데 이건 아니야. 우리 잘못이야. 인간학 잘못이라구. 분명 잘못된 치료였어. 아니, 실험이었어. 그리고 죄 없이 억울하게 살해당했단 말이야.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런데 자살로 위장해? 넌 교수한테 집착했던 거야. 미친 듯이 홀려서는… 도덕적인 가치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지. 집착 때문에 인간성을 상실한 거야. 그 교수처럼!
유미
집착? 내가 집착으로 보여? 이런 건 존경이라는 거야. 넌 누굴 존경해 본 적이 없지? 그건 네가 꼬여서 그래. 뒤틀렸으니까. 교수님은 널 멸시했지. 교수님이 날 인정할 때마다 넌 나를 부정해. 그때마다 무슨 생각 드는지 말해 줘? 넌 다른 사람이 주목받는 게 싫은 거야. 나보고 잘난 맛에 산다고 했니? 그러는 넌? 그게 부러웠던 건 아니고?
술이
그 딴 거 몰라. 내가 기억하는 건 결국 내가 옳았다는 거야. 인간학은 내 보고서를 봤어. 남자의 불안정한 인격에 대해서 알고 있었어. 나 스스로가 자신이 없었을 뿐이지. 자료는 정확했다고. 나 알잖아. 하겠다면 앞뒤 없이 굴잖아. 누구처럼 음흉하게 있지 않아.
유미
그 음흉한 게 나니?
술이
보고서… 교수님께 빌다시피 말했다. 한 번만 검토해 달라고. 그런데 그 인간이 한 짓을 봐. 전화 한 통으로 기다리란 말 한마디였으면 됐어. 그랬으면 그런 일 생기지도 않았어. 존경? 그따위 것 개나 줘버려. 인간학은 비겁한 살인자일 뿐이야.

유미는 술이를 향해 물컵을 날린다

술이
나, 전부터 궁금한 거 있었는데… 너 인간학하고 잤니?

유미의 손이 올라간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 술이는 그런 유미에게 지지 않는다.

미아
그만하자… 제발 그만하자… 이러려고 모인 거 아니잖아.

미아는 일어난다. 커피를 탈 준비를 한다.

미아
그 남자… 말이야… 그 사람은 사람을 죽였잖아… 어떻게 지낼까? 난 본 것만으로 이런데… 어떻게 보면 그 남자는 약에 취해서 그랬다고 자책하고 있을 거야. (커피포트에 물이 끓는다.) 아니면… 자기가 한 일이 아니라고 부정하면서 지낼까? 커피 마실래?
유미
난 됐어.

술이는 대답 대신 술을 마신다. 미아는 커피 세 잔을 탄다.

미아
난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 그런데… 알고 싶었어. 너희도 나처럼 벌을 받고 사는지…
술이
우리가 왜 벌을 받아야 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어? 벌은 그 인간이 받아야지. 난 인간학이 갑자기 죽었을 때… 솔직히 그런 생각 했어. 벌 받은 거라구.
미아
유미는? 교수님이 왜 갑자기 쓰러졌다고 생각해?
유미
무슨 얘길 하고 싶은 건데?
미아
한 남자가 사람을 죽였어… 그건 잊히지 않아… 그런데 잊고 산 게 있어… 기자들하고 인터뷰하던 날 교수님 돌아가셨잖아. 우연치 않게… 심장마비로… 우린 다음날 발견했구…
유미
그래서?
미아
나, 교수님 커피에 그 약 탔어. 그 약… 1온스의 악마. 기억나지? 치사량 1온스. 그냥 조금… 미워서… 괴롭게 만들고 싶어서… 잘난 니들 사이에서… 난 소심하게 복수한 거야… 우리한테 그런 짓을 하게 만든 게… 내 앞에서 사람을 죽게 만든 것을 용서할 수 없었어. 그리고 그 사이코를 감싸기 위해 한 짓을 용서 할 수 없었어. 내 생애 최고의 죄악이야… 그런데… 용기가 없어서… 조용히 살고 싶어서… 커피에… 스포이드 세 방울이었어. 1온스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거였단 말이야. 정말… 그것밖에 안 넣었어…
유미
무슨 말이야…
미아
강 선생이랑 헤어진 이유가… 내가 연구소를 떠난 이유가… 그 약 재료를 훔쳤었거든… 아주 조금… 티도 안 나게… 그런데 다음날 강 선생이 그러는 거야… 재료가 내가 훔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없어졌다고…

유미 술을 마신다… 미아는 커피를 두 사람 앞에, 자기 앞에 둔다.

미아
마셔.
유미
안 마신다고 했잖아!
미아
마셔! 왜 못 마시는데? 커피에 독이라도 들었을까 봐?
유미
몇 방울이었어! 몇 방울… 단 세 방울이었어! 정확히 기억해! 그것으로는 1온스가 되지 않아!
미아
나도 그랬어… 나도 그랬다구…
술이
왜… 넣은 거야? 너 인간학한테 그런 거… 넣을… 필요…
유미
날 이용하려 했으니까… 난 진심이었는데… 그래, 나 넣었어. 그 인간 우스운 꼴 보고 싶어서. 배신감에 넣었어… 그런데 죽어 버렸어… 평생 잊지도 못하게…
술이
유미야…
유미
넌 아무렇지도 않니? 넌 넣지 않았어?
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술을 마신다.

술이
왜? 내가 넣길 바랐어? 인간학이 죽은 게 우리 잘못도 아닌데… 왜 우리가 이래야 해? 대단하다 인간학… 죽어서도 우릴 쥐고 흔드는구나. 지랄 맞은 인간이야. 그 인간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고 연구소도 세웠어… 커피…. 난 누구에게도 커피 심부름 시키지 않아… 정말… 벗어 날 수가 없어… (짐을 챙긴다) 여기 오는 게 아니었어.
유미
어딜 가? 넌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 미아 얘기가 아무렇지 않아? 미아는 알고 있었던 거야. 나도 넣었거든. 교수님 커피에 나도 넣었어.
술이
네가 왜? 더럽게 존경하던 ‘교수님’이였잖아. 넌 넣지 않았어. 미아도 넣지 않았어! …… 지난 일이야.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야… 교수님… 지병으로 돌아가신 거야.

나가려다가…

술이
…… 내가 약을 넣었다고 치자. 알잖아? 교수님은 내 커피를 마시지 않아. 날 인정 하지 않으니까. 난 끝까지 교수님께 건방진 연구생이었잖아. 마시지도 않는, 맛없는 커피나 타주는 일개 연구생… 그래… 나 애정 결핍이라 나 좀 봐달라고 교수님 앞에서 발악 많이 했다. 그런데 난 끝까지… 인정받을 가치도 없는… 교수님이 내 커피를 마실 리가 없잖아? 내게 그 날은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죽였던 거… 그 일 하나밖에 없었어… (문 앞에 멈춰 선다.) 그냥… 가슴에 안고 살아… 지난 일이잖아… 다신 끄집어내지 않을 거야…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으니까… 그 일은… 더러운 우연이었을 뿐이야.

술이 퇴장.
미아는 일어나 술이의 커피잔을 치운다.

미아
꿈 말이야. 가끔 꿈에 그 날 밤 영안실이 나타나. 눈을 질끈 감고 떨리는 손으로 시체 팔을 잡고 손목을 그었잖아. 장갑 너머 느껴지는 서늘한 체온… 차가운 건 다시 따뜻해질 수 있어. 하지만 서늘한 건 아무리 붙들고 있어도 따뜻해지지 않아. 상처란 그런 걸까? 아니면 우리만 그러는 걸까?

미아는 자신의 커피잔을 치운다.
유미는 자신의 커피를 마신다.

무대 어두워진다.

호들갑 작가소개
<우리는 인간학 교수를 회상한다>를 쓴 작가 성화숙은 1982년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당시만 해도 광주의 기억은 은폐되고 조작되던 암울한 5공 전두환 정권의 시기였고, 한편에서는 학생들이 미국문화원에 불을 지르고 있었다. 격동의 80년대를 지나고,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연극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전남대 극문화연구회 활동을 통해 일생을 연극과 하기로 마음먹고, 그 이후 배우로 활동하다가 대학로에서 슬쩍 연출가 생활을 하기도 했다. 집안 사정으로 광주로 내려왔으나, 여전히 연극에 대한 열렬한 애정으로 광주와 서울을 찍으며 연극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숲도깨비전>이라는 공연을 선보였다. 어른 안의 아이, 아이 안의 어른을 발견하여 무대에 올리는 것을 즐기며, 동화와 설화 속에 담긴 무수한 상상력과 이야기의 힘을 탐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공간과 공간, 차원과 차원을 이어주는 연극 재담꾼, 성화숙의 앞날을 기대하시라. (편집위원 정진세)

 

태그 우리는 인간학 교수를 회상한다, 세 여자의 커피, 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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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60호   2015-01-22   덧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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