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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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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役
형사 役

취조실. 무대엔 책상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고 한 쪽엔 정장 차림의 남자, 그 반대쪽엔 교복을 입은 단정한 흑색 긴 생머리의 여학생이 정자세로 앉아 있다. 남자는 자신의 앞에 있는 파일과 여학생을 번갈아 본다. 여학생은 딱히 이 상황에 대해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다. 남자가 파일을 집어 듦과 동시에 극이 시작된다.

형사
이름이 임연우. 그래, 연우. 나이는 열일곱이고, 98년 11월 8일생?
미래고 재학 중…… 어, 너 내일 생일이네?

연우, 형사의 질문에 한 번씩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한다.

형사
생일 날 입소를 하는구나.
연우
네. 생일이 뭐 대수인가요.

연우, 엄지, 검지손가락을 번갈아 물어뜯기 시작한다.

형사
이제 마지막이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네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왔어.
연우
내 이야기요?
형사
그래, 네 이야기.
연우
내 이야기라…
형사
동생을 죽인 이유를 말해 주면 더 좋고.
연우
(사이) 그래요. 마지막이니까.
형사
천천히, 생각나는 말 아무렇게나 다 해도 돼.
연우
아저씨, 생일이 특별한 날인가요?
형사
그렇지?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날이잖니.
연우
그렇구나.
형사
왜?
연우
우리 엄마는 나한테 그랬거든요. 네가 없어졌어야 할 날이었다고.
나 같은 건 태어나는 게 아니었다고.

(사이)

연우
아저씨, 저 사실 경찰서 처음 아니에요.
형사
아저씨 아니고 형사님이야.
연우
저 기억, 하시죠. 저 아시잖아요.
형사
글쎄, 기억이 잘. 미안하다. 서에 왔다 간 친구들이 한 둘이어야지.
연우
전 그때 기억나는데.
아저씨 그때 서에 부모 출두 안 한 애새끼는 내가 처음이라고
욕했던 아저씨들이랑 같이 있었잖아요.
형사
아아, 그랬니.
연우
그때 저 왜 그냥 풀려난 거였어요?
아아, 처음이라구, 미성년자 가출 하도 건수가 많아서
처음이기도 하구 해서 풀려난 거였나?
(사이) 아저씨.
형사
형사님이라니까.
연우
내가 그때 같이 놀러 갔던 남자애들이랑 한바탕 섹스를 할 뻔했는데요,
사실 그러려구 클럽에 가기도 했구. 아무튼 못하긴 했지만 만약 내가 그 애들이랑
섹스를 하고 나서 아주 절망스럽게도, 그중 한 남자아이의 애를 덜컥 배 버렸어.
그랬으면 알았을까?
형사
뭘, 뭘 말이니.
연우
우리 엄마 기분을 말이에요.
(사이) 원치 않는 아이 뱃속에 데리구 살았던 기분 말이야.
난 진짜, 아직도 궁금해요. 우리 엄마 기분.
엄마랑 제 나이 차이가 16살밖에 안 나거든요. 아빠랑은 20살.
저는 알고 싶었어요. 열여섯의 엄마가 느꼈던 그 기분을요.
(사이) 아, 그리고 그때요. 조사 받고 집에 갔거든요. 갔는데 아무도 없더라구요.
난 서에 오지도 않길래 집에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겠거니, 했는데
동생년 데리고 외식하러 나갔더라구요. 동생년은 왜 낳은 거지.
걔한텐 왜 그렇게 잘해 주는 걸까요.
나나 그 씨발 동생년이나 다를 게 뭐가 있다고? 어?
형사
연우야, 말 가려서 하자.
연우
나는 왜! 왜 새 옷 하나 제대로 선물 받아본 적 없는 건데?
그리고 그날이, 동생년 생일이었어요.
(사이) 아저씨, 우리 엄마 아빠는 내 생일을 축하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형사
연우야.
연우
(혼잣말로 아주 작게) 내 생일 좀 기억하라구,
좆같은 동생년 생일만 기억할 게 아니라 내 생일도 좀 기억하라구……
아저씨, 그런데 만약 우리 엄마 아빠가 아예 내 생일을 모르고 있었다면요?
그런 거였음 내가 애초에 이럴 이유가……

(사이)

연우
아저씨 평소엔 말 많이 했었잖아요. 오늘은 왜 이래?
형사
넌 평소에 말 많이 안 했었잖아. 오늘은 아니네.
연우
그래서 싫으세요?
형사
전혀, 지금 같은 식으로 동생 죽인 이유도 말 해 주면
연우
그래서, 오늘 온대요?
형사
응?
연우
엄마랑 아빠, 오나구요.
형사
오늘은 오실 거야. 연우 네가 볼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이지만.
연우
와, 생각보다 기네요.
형사
긴 건가?
연우
이번엔 오네. 접때는 안 왔었잖아. 2년 전엔. 연지 생일날엔.

(사이)

연우
언제 오는데요? 엄마 아빠.
형사
지금이 두 시니까 한 시간쯤 뒤에나 오실 거야. 왜 계속 묻는 거니.
연우
아니요. 그냥.
형사
그래도 입소 직전이 되니 뵙고 싶기는 한 거구나.
연우
아뇨. (혼잣말로 아주 작게) 보고 싶기야 항상 보고 싶었죠.
형사
연우 너, 이제부터 혼잣말 금지야.
연우
(다시 엄지, 검지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갑자기 보기 싫어졌어요.
저 여기서 언제 나가요?
형사
이제 한 5분 남았어.
연우
엄마 아빠 오시면 좀 전해 주세요.
형사
무얼 말이니?
연우
으음, 잠시만요. 생각 좀.
형사
뭔데. 물건이 아니야?
연우
네, 아니에요. (사이) 한때 소원이었던 거 대신 이뤄 주는 거라구요.
그런데 내가 죽기는 싫은 거 있지. 그래서 죽여 봤다구. 이렇게 전해 주세요.
형사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연우
연지 죽인 이유 궁금해 하셨잖아요.
형사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연우
전해들을 두 사람은 잘 알 거예요.
형사
그래.
(계속해서 손을 입에 물고 있는 연우를 보다 자신의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며)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야. 부모님 뵙고 들어갈 시간은 있는데 정말 안 뵐 거야?
그리고 너, 손가락 물어뜯지 마. 되게 아파 보여.
연우
네?
형사
그 손가락. 그 안에 세균이 다 들어가는 거야.
연우
아아.
형사
왜.
연우
처음이에요.

연우, 두 손가락과 형사를 번갈아 본다.

연우
아, 아저씨. 면회 의무, 뭐 그런 건 없어요?
형사
형사님이라니까. 그리고 그런 건 없어.
연우
(갑자기 빠른 어조로)
그런 거 있으면 어쨌든 주기적으로 보기 싫은 내 얼굴 한 번은
보러 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왜? 왜?
그러면 나 소년원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안 올 수도 있는 거야? 응? 진짜?
형사
연우야.
연우
왜… 왜요… 왜…
형사
연우야.
연우
왜! 왜요…
형사
나도 마지막으로 질문해야 할 게 있어.
연우
뭔데요.
형사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한, 죄책감은 없니?

연우, 대답 없이 쥐어뜯던 손가락을 바라본다.

(사이)

형사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래,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연우
(일어서며) 아저씨.
형사
형사님이래도.
연우
그래요. 형사님. (사이) 그냥, 내가 죽을 걸 그랬나 봐요.

형사, 대답 없이 취조실의 문을 열며 고개를 바깥쪽으로 까딱거린다.

연우
(천천히 문 쪽으로 가서는 나가기 직전 멈춰 서서)
근데, 내가 죽어버리면 정말로 좋아할까 봐.
형사
(사이) 이제 그만 나가자.
연우
뭐, 죽은 뒤의 나라면 알 수는 없지만요.
형사
후우.
연우
형사님.
형사
응.
연우
전 임연우예요. 올해 열여덟이구요.
형사
그래.
연우
전 우리 엄마 아빠 딸이에요.
(사이) 그런데 우리 엄마 아빠만 몰라 줬어.

(사이)

연우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형사
뭐니.
연우
이건 아저씨한테 하는 부탁이에요.
형사
나한테?
연우
생일 축하한다고 해 주세요.
형사
우리 내일도 봐. 그 말은 내일 해 줄게.
연우
네.

(두 사람, 취조실을 나간다.)

호들갑 작가소개
<생일 축하해>를 쓴 작가 임지수는 1995년의 추운 겨울날 서울 대림동에서 태어났다. 작가는 왼손잡이이다. ‘왼손잡이는 재주가 많다.’ 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작가는 자신의 재주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내지 못한 채 자라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제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작가는 머릿속에 수많은 공상을 지닌 채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보냈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대학로에서 <고스트 라디오>라는 연극으로 생애 처음 극을 접했고, 작은 무대에서 하나의 세계를 본 작가는 당시 제 가슴을 마구 두드렸던 연극이라는 것에 빠지게 된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없는 재주를 만들어 보기라도 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이제 성인이 된지 14개월 차, 자신의 머리 안에서 수차례 지리멸렬을 반복했던 공상들을 펼치려면 한참 멀었다. 또한 머리에, 가슴에 다 담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녀는 앞으로 어찌 이어질지 모를 길을 빛내기 위해 그 길을 열심히 갈고 닦을 예정이다. (편집위원 오세혁)

 

태그 생일 축하해,임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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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61호   2015-02-05   덧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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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짧은 글인데도 인물의 복잡한 감정이 잘 느껴지네요... 마지막 장면도 인상 깊습니다. 좋은 글 잘 봤어요! 다음 작품도 기대할게요.

2015-02-09댓글쓰기 댓글삭제

비엔나
심리적 압박이 느껴지는 취조실에서 연우가 점점 자신의 감정을 분출해내는 모습이 인상깊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형사에게 슬며시 털어놓는 장면도 좋네요. 공연으로 올라간다면 더 큰 감동이 있을 것 같은 글이었습니다. 좋은 글 집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2015-02-17댓글쓰기 댓글삭제

오세혁
고맙습니다! 섬세하면서 강렬한 임지수 작가의 활약을 기대해 주시길!

2015-02-17댓글쓰기 댓글삭제

아무거나
감정 몰입이 잘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2015-03-15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