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은아
지선
은아와 지선이가 보인다.
둘은 나란히 앉아있다. 앞에는 테이블이 하나 있다.
커피를 마시는 모양이다.
은아는 모자를 쓰고 있다. 옷차림에는 어울리지 않는 행세다.
- 지선
- (커피를 마시다) 아, 만나자마자 물어본다는 걸 깜박했네.
- 은아
- 뭐?
- 지선
- 너 그 모자는 뭐냐? 새로 사서 굳이 쓰고 온 거야?
- 은아
- 아… 이거… 별로 안 어울리지?
- 지선
- 안 어울리는 정도니? 옷이라도 맞게 어울리게 입던가. 그게 뭐야.
- 은아
- 회사 가야하니깐.
- 지선
- 회사에도 그 모자를 쓰고 갔단 말이야?
- 은아
- 응.
- 지선
- 뭐라고 안 해?
- 은아
- 응.
- 지선
- 아무도?
- 은아
- 응.
- 지선
- 진짜 이상한데.
- 은아
- 그런가?
- 지선
- 당연하지. 회사에 웬 모자야.
- 은아
- 응. 근데 다들 쓰고 다니던데?
- 지선
- 뭐?
- 은아
- 우리 회사. 다들 모자 쓰고 다닌다고.
- 지선
- 다들 모자를 쓰고 다닌다고?
- 은아
- 응. 그래서 하나도 안 이상했어.
- 지선
- 뭐지?
- 은아
- 몰라.
- 지선
- 아무튼, 그래서 너도 쓴 거야?
- 은아
- 뭘?
- 지선
- 모자. 다들 쓰고 다니니까 너도 쓴 거냐고?
- 은아
- 아… 아니.
- 지선
- 그럼 왜?
- 은아
- 그게….
- 지선
- 뭔데?
- 은아
- 난 이유가 있어.
- 지선
- 뭐?
- 은아
- ….
- 지선
- 왜 그래, 뭔데?
- 은아
- (주변을 둘러보고, 작게 말한다.) 나 머리에 뿔이 났어.
- 지선
- 어?
- 은아
- 머리에 뿔.이.났.다.고.
- 지선
- 뿔?
- 은아
- 응. 뿔이 났어. 여기 뒤통수 가운데에.
- 지선
- 그게 말이 돼?
- 은아
- 그러게. 나도 처음에는 그냥 뾰루지 같은 게 생긴 줄 알았거든. 그냥 되게 작았어. 그냥 이렇게 손가락으로 만져야 느껴질 만큼. 머리 감다가 발견했어.
- 지선
- 어.
- 은아
- 그러니까 처음에는 머리카락에 숨겨졌었거든. 근데 그게 점점 자라는 거야.
- 지선
- …?
- 은아
- 그래서 머리카락을 뛰어넘어서 새끼손가락만 해졌어. 머리카락으로 안 가라져.
- 지선
- 뭐야. 한 번 봐봐.
- 은아
- 안 돼.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 지선
- 아, 그런가. 그럼 이따가 화장실 가서 보여줘.
- 은아
- 알았어.
- 지석
- 근데 어떻게 그러지? 갑자기?
- 은아
- 응. 진짜 처음에는 작았는데…
- 지석
- 그래?
- 은아
- 골치야. 병원에서도 별 방법이 없데.
- 지선
- 병원 갔었어?
- 은아
- 응. 더 자랄까봐 겁이 나서.
- 지선
- 하긴 더 커지면 모자로도 안 숨겨지겠다. 더 안 자라는 거래?
- 은아
- 모르겠어. 의사도 이런 거 처음본데.
- 지선
- 희한하네. 언제부터 생긴 거야?
- 은아
- 글쎄… 회사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인가?
- 지선
- 그럼 좀 됐네?
- 은아
- 응. 그렇지.
- 지석
- 근데 이제 인턴 얼마 남았지?
- 은아
- 응. 1달 정도 남았어.
- 지선
- 아, 엄청 빠르네.
- 은아
- 응. 순식간이야.
- 지석
- 무슨 말 없어?
- 은아
- 어?
- 지선
- 회사에서 말이야.
- 은아
- 어….아, 초조해. 왜 아무 말도 없지?
- 지선
- 그러게.
- 은아
- 재계약 안 되면 또 새로 구해야하는 거잖아.
- 지선
- 그치…
- 은아
-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 지선
- 맞아.
- 은아
- 난 솔직히 또 할 자신이 없다.
- 지선
- 누군 있냐.
- 지선
- …너무 초조해하지마.
- 은아
- 그러고 싶지 나도. 너는 뭔 소리 있어?
- 지선
- 아니. 아직.
- 은아
- 그래…
- 지선
- …
- 은아
- 정직원인 사람들은 좋겠다.
- 지선
- 좋지. 그냥 회사 다니면서 일만 하면 되는 거 아니야.
- 은아
- 그치. 우리가 뭐 놀면서 돈 받겠다는 거냐. 일하면서 받겠다는데.
- 지선
- 그러게. 그게 그렇게 힘들다.
- 은아
- 어. 힘들어.
- 지선
- ……
- 은아
- ……
- 지선
- 조만간 뭔가 말해주겠지. 그나저나 너 그 뿔 안 들키게 조심해라. 이상하다고 재계약 안 되면 어떻게.
- 은아
- 그치? 그래서 모자 쓰고 다니는 거야.
- 지선
- 잘 생각했네.
- 은아
- 응.
- 지선
- 그래도 다행이네. 회사에 모자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니.
- 은아
- 응. 거의 다들 쓰고 다니는 거 같아. 그나마 다행이지 뭐야.
- 지선
-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너도 같이 가서 뿔 좀 보여주라.
- 은아
- 아, 장난하지 마.
- 지선
- 킥킥. 알았어. 기다려.
지선, 일어나서 화장실에 간다.
은아는 자신의 모자 위로 뿔을 만져본다.
뒤돌아서 화장실 가는 지선의 뒤통수에 뿔이 보인다.
암전.
※ 본 희곡은 ‘10분희곡릴레이’ 독자 투고를 통해 게재된 희곡입니다.
- 호들갑 작가소개
- 1983년 9월 생. 좋아하는 공연마다 대본을 읽기 위해 집착적으로 관련자들에게 대본을 요청하는 열혈 여인. 연극 전공 후 놀겠다는 신념으로 다른 일을 했지만 결국 직장인 극단 ‘아해’에서 다시 연극을 만나 창작극 <파라다이스 호텔>을 시작으로 연출을 맛보고, 지금은 국민연극 <라이어>를 만드는 회사에 통학하며 연출 데뷔, 여전히 연출 공부 중.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지는 순간과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가 너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극작가가 된다’는 글귀를 아끼며, 그런 순간과 대화, 무대가 신경 쓰여 어쩔 줄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어 어쩔 줄 모르는.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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