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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기자(35)
학생(23)
위인의 동상

귀 찢는 매미 소리. 이른 아침, 공원. 한여름, 후텁지근하다.

무대 정면 오른쪽에 위인의 동상이 서 있고, 왼쪽에는 자동차 한 대가 아무렇게나 주차되어 있다. 자동차 운전석의 열린 문 사이로 기자의 발이 삐져나와 있다. 자동차에서 쓰레기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양말, 종이컵, 편의점 음식 포장지들이 바닥에 나뒹군다.

전화벨이 울린다. 벌떡 일어난 기자, 전화기를 뚫어져라 보다가 마지못해 받는다.

기자
예, 부장님. 그럼요. 지웠습니다. 예. 기록도 삭제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시잖아요. 제가 원래 모르는 건 아닌데, 순간적으로! 예, 고쳐야지요. 알고 있습니다.
박 기자도 잘 타일렀습니다. 알아들었을 겁니다. 걱정끼쳐드려 정말 죄송합... (전화 끊긴다)

기자, 바지 주머니를 거칠게 더듬더니 담배갑을 꺼낸다. 남은 한 개비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한모금 깊이 빨고는 허공을 향해 후욱 내쉰다. 무심히 거닐던 기자, 동상에 시선이 머문 채 담배를 마신다. 한모금. 두모금. 갑자기 발에 문제를 느낀 듯, 선 채로 오른발을 왼발에 바짝 붙여서 비빈다. 다리를 이리 꼬고 저리 꼬며 이상한 자세로 간지러움을 해소하려고 한다. 기자는 결국 자동차에 걸터앉아 구두를 벗는다. 양말도 벗는다. 바닥에서 연고를 주워 바른다. 신속하게 최선을 다한다. 처방이 끝나자 구두 위에 맨발을 얹은 채, 다시 담배를 한모금.

기자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위인의 동상이 있다. 동상을 멍하니 보다 담배갑을 간단히 구긴다. 동상을 향해 조준한다. 던진다. 툭. 담배갑은 동상까지 닿지 못하고 도중에 고꾸라진다. 구두를 대충 구겨 신는다. 발끝으로 신발을 끌어 당기며 동상에게 다가간다. 잠깐 주변을 살핀다. 바지춤을 푼다. 동상과 적당한 거리를 찾는다. 조준한다. 오줌을 눈다. 오줌 줄기가 치솟아 동상의 머리까지 적신다. 동상은 감내한다.

학생이 자전거를 끌며 등장한다. 오줌 누는 기자의 뒷모습을 보고 멈칫하더니 자전거와 함께 멀찍이 물러선다. 다시 멈칫하더니 학생의 눈이 반짝인다. 자전거를 조심히 세워놓고 주머니에서 스마트 폰을 꺼낸다.

학생
(혼잣말로) 대-박.

학생, 슬금슬금 자동차 뒤로 숨는다. 자동차 위로 스마트 폰만 높게 들어올려 앵글을 잡는다.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른다.

학생
여기 보세요~

기자, 고개를 돌렸가 화들짝 놀란다. 바지춤을 추스르고 동상 뒤로 숨는다. 학생, 달려가서 그가 저질러 놓은 흔적을 촬영한다.

학생
와, 대~박! 존나 한강이야!

이어 학생은 기자의 얼굴을 제대로 촬영하려 그를 쫓아가고, 기자는 당황하여 얼굴을 가린 채 엉거주춤 자동차 쪽으로 간다.

학생
아저씨! 에이, 아저씨~
기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자동차에 붙어서) 죄송합니다.
학생
손 좀 치워봐요, 아저씨.
기자
(허리 숙여 인사하며) 죄송합니다, 죄송!

기자, 갑자기 손을 훅 뻗어 학생의 핸드폰을 낚아채려 한다. 학생은 날렵하게 피한다. 몇 차례 반복하다 학생이 카메라를 기자의 얼굴 바로 앞에 갖다 대어 촬영에 성공한다.

학생
대~박. (동영상을 확인한다.)
기자
씨발. 핸드폰 주세요.
학생
와, 존나 한강.
기자
살려주세요.
학생
헐.
기자
뭘 어쩔려구요?
학생
인터넷에 올릴라구요. 이순신 오줌남.
기자
학생?
학생
이런 짓 하는 사람들 다시는 고개 못 들고 다니게 해야지.
기자
나 처음이에요!
학생
(고개를 좌우로 젓는다.)
기자
진짜에요. 노상방뇨. 나 처음이에요. 믿어주세요.

기자, 다시 야심차게 스마트 폰 쪽으로 손을 훅 뻗고, 기자의 손이 닿자 학생이 경악한다.

학생
아 씨, 이 아저씨 안 되겠네.
기자
미안해, 학생. 핸드폰 좀 이리 줘. 지워 줘.
학생
갑자기 반말이시네?
기자
미안해‘요’, 학생. 그럼 뒤에 얼굴만이라도 짤라줘요.
학생
아저씨, 바로 저 쪽에 화장실 있잖아. 왜 동상에다가 오줌을 싸?
기자
학생. 내가 꼭 오줌이 누고 싶어서 눈 건 아니야.
학생
그러면?
기자
화가 나서 그랬어요.
학생
아, 화가 나서 그랬구나...
기자
그래!
학생
납득이 안 가는데.

학생, 자전거 쪽으로 향하자 기자가 앞질러 자전거를 붙잡는다. 자전거가 휘청한다.

학생
아저씨!
기자
(자전거를 붙잡고) 사람이 화가 너무 나면 가끔 이상한 행동도 하는 거야. 몰라요? 가끔은 어.. (자전거를 흔들며) 돌아버리는 거라구!
학생
아저씨! 그냥 급했다고 하세요.
기자
후, 그래. 너무 급해서 저기까지 못가겠다고 쳐봐요. 그럼 그냥 싸? 바지에? 그냥 막 싸? 난 막 힘도 들고, 발에는 약 쳐 발라서 신발도 제대로 못 신고, 씨발, 몇 달 동안 밤 새가며 겨우 건수 하나 건졌는데도 기사 짤렸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바지에 싸? 포기해?
학생
아저씨 기자에요?
기자
아니.
학생
맞잖아요. 방금. 기사 썼는데 짤렸다고.
기자
아닌데?
학생
어느 신문이에요? 방송? 완전 대박이다. (기자가 시선을 피하자, 들으란 듯) 이거 아저씨 차에요? 와, 주차도 기가 막히게 해놓고. 시민 의식 쩐다. 현재시각 5시 57분, 여의도 공원 한복판에 불법주차되어 있는 차량을 발견, 조사결과, 현직기자의 차량으로 밝혀짐.
기자
학생 몇 살이야?
학생
왜요?
기자
학교는?
학생
취업 준비하느라 휴학했어요.
기자
전공은?
학생
아저씨랑 비슷한 거!
기자
희망 직업은?
학생
......(기자를 쳐다본다.)
기자
핸드폰 내 놔.
학생
안 되는데.
기자
하늘같은 선배님이시다.
학생
아직 아닌데. 현장 고발을 한 건 해야 해서요. 스터디 하거든요. 자기소개서 쓰려면 인터넷에 올려서 조회 수도 높여야 되고, 보이는 게 있어야 하거든요. 아시죠?
기자
이봐, 빡친 놈이 오줌 싸는 게 기사거리나 된다고 생각해?
학생
왜 안 되요? ‘열 받은 기자, 영웅 면상에 오줌 싸다!’ 사람들이 클릭하잖아요! 아저씨 근데 어디 신문이에요?
기자
그러면 인간적으로 얼굴이라도 짤라줘야 하는 거 아냐? 초상권 몰라?
학생
에이, 요새 누가 얼굴을 가려요. 얼굴 보려고 클릭하는데. 아저씨 얼굴 벌써 어디선가 떠돌아 다니고 있을 걸요?
기자
내 입장이라는 것도 있고!
학생
죄송해요. 저도 급해서.
기자
야! 너, 내가 고발하면 어쩔 거야?
학생
오, 고발하면 더 이슈가 될 걸요! 어차피 여론은 내 편일 테고. 어차피 아저씨 잘한 거 없잖아요.
기자
이 봐. 여론이 니 편인 거랑 니가 감옥 가는 거랑은 다른 문제에요.
학생
(기자를 뚫어져라 보다가) 와, 아저씨. 협박을 하다니. 녹음해 놔야지.

학생, 핸드폰의 녹음 기능을 켜서 기자에게 들이댄다. 기자, 순간 긴장하여 아무 말 못한다. 학생은 마치 검투사가 칼을 휘두르듯 스마트 폰을 휙휙 휘두른다. 학생은 그대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며 세워놓은 자전거 쪽으로 가려한다. 기자, 학생을 위협하듯 훅훅 다가가다가, 재빨리 자전거를 자동차 위로 올려버린다.

학생
아, 내려놔요!
기자
그래, 그걸로 니가 얻는 게 뭐야?
학생
자전거 내려놓으라고!
기자
찍은 거 지우라고!

학생이 팔딱팔딱 뛰어보지만 기자에게 당할 수가 없다. 기자, 이 와중에도 학생에게서 핸드폰을 뺏으려 안간힘을 쓰고, 학생은 사수한다. 둘이 서로 팔을 맞잡고 팽팽하게 민다. 굵은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학생
아 씨, 비오잖아. 자전거 젖는단 말이야! 어제 산 건데!
기자
겨우 이 딴 걸로 쩔쩔 매는 게, 여론이 어쩌고 저째?
학생
놔! 놓으라고! 소리 지를 거야! 악! 악!
기자
니가 내 인생을 망쳐서 얻는 게 뭔데, 도대체?!
학생
(기자를 확 뿌리치며) 씨발!

서로를 패대기친다. 헉헉 숨을 몰아쉰다.

학생
사람들이 내 말 믿잖아요! 내 말이 중요해지잖아.
기자
장난해?
학생
지금은 아무도 내 말 안 믿어. 무시하고. 존나 분위기 파악 못한다고 비웃고. 인터넷에는 그런 거 없어요. 사람 갖고 무시하는 거. 증거만 있으면 돼. 내가 개무시하고 밟아주면 되니까. 그럼 다 내 편이야.
기자
겨우 그거야?
학생
아저씨는 뭐가 대단해서?
기자
그게, 진짜 세상이냐?
학생
그럼 가짜야? 진짜는 뭔데?
기자
진짜 세상은 말야, 그런 걸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니가 하는 건 애들 장난이라고.
학생
어~ 그럼 아저씨가 하는 건 진지한 진짜고? 근데 기사는 왜 짤려? 가짠가 보지?
기자
이노무 새끼! 진짜니까! 진짜니까 짤리는 거야!
학생
그럼 가짜라는 거잖아! 결국 다 가짜면서! 가짜! 가짜! 다 가짜야!

학생, 흥분하여 자동차를 다 부숴버린다. 소품으로 얼기설기 만들었던 자동차는 조각조각 무대로 흩어진다. 학생, 분이 안 풀린 듯 무대 벽으로 돌진해 몸으로 벽마저 무너뜨려버린다.

학생
(동상에게) 야! 내려와! 가짜! 가짜!

학생은 동상의 도포 자락마저 찢어버리더니 이내 주저앉는다.
한참을 꿈쩍 않던 기자, 자동차에서 자전거를 끄집어 내린다.

기자
가라. 꺼져. 나도 어차피 끝이야. 한 번 망한 거, 두 번 못 망하겠냐. 꺼져.

학생, 재빨리 자전거로 달려가서는 다시 안전한 거리만큼 멀어진다.

기자
(바닥에 드러누우며) 어차피 내 말은 중요하지도 않겠지.

기자, 목에 걸린 기자증을 벗어 학생에게 던져 준다.

기자
야, 이것도 가져가라.
학생
싼 거 닦아 놓고 가. 신고할 거야.
기자
비 오면 씻길 거, 닦긴 뭘 닦냐.

학생, 기자증을 주워 보고는 기자에게 도로 던진다.

학생
모자이크는 씌워줄게요.

학생은 자전거를 끌고 떠난다. 폭우가 쏟아진다. 기자는 신발과 양말까지 벗어던지고 대자로 바닥에 누워 쏟아 붓는 비를 맞는다.

기자
아~ 좋~ 다!

폭우가 점점 심해진다. 폭우가 더 심해진다. 기자, 순간 훅 머리를 털며 일어난다. 벗은 양말과 기자증을 주워들고 신발을 신는다. 자동차로 향하려던 기자, 흩어진 자동차를 보고 망설인다. 머리를 가리며 무대 밖으로 뛰어 퇴장한다.

아무도 없는 무대. 빛이 어두워진다. 동상이 움찔한다.
암전.

호들갑 작가소개
1984년 7월 부산에서 태어났다. 방학 중이던 10살 생일파티에서 안방의 미닫이문을 막으로 삼아 첫 연극을 했다. 이후 친구들의 뜨거운 반응으로 동물들이 등장하는 창작극을 시도했으나 학교 뒷동산에서 친구들에게 내도록 동물 울음소리만 내게 하다가 연출자 본인의 아이디어 고갈로 공연을 올리는 데에 실패한다. 그 후 구연동화와 멀리뛰기, 환경미화 등의 활동에 몰두하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20여년이 지난 현재, 초등학교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함께 연극할 친구들을 다시금 하나 둘 모으고 있다. (편집위원 오세혁)

 

태그 오줌,김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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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67호   2015-05-07   덧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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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wwa
진짜 재밌음요. 개 짱.

2015-05-0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