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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의 담론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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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준호

    aornrshsha@hanmail.net


    등장인물
    카페 사장(남, 50대 중반)
    아르바이트 지원자(여, 25세)



    서울 변두리의 한 카페, 무대 한가운데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있고 한쪽 의 자에는 카페 사장이 앉아있다. 테이블 위에는 두 개의 잔에 아이스 아메리카 노 커피가 담겨 있다. 무대 한쪽 가장자리에 쓰레기통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카페의 출입구가 있다. 사장이 누군가를 기다리는지 손목에 찬 시계를 보면서 극이 시작된다.



    사 장(시계를 보며) 이제 올 때가 됐는데….

    아르바이트 지원자 등장. 어깨에는 고급 가방을 메고 있다.

    지원자(숨을 헐떡이지만 밝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사 장(일어서며) 아! 이거 예쁜 아가씨네. 자리에 앉아요!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을 가리키며) 이 커피 좀 들어요.
    (말을 놓으며) 내가 미리 준비했어.
    지원자(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합니다!

    사장과 지원자, 자리에 앉는다. 지원자는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지원자(헐떡이던 숨을 고르며) 버스가 좀 밀려서… 늦지 않으려고 내리자마자 뛰어 왔어요.
    사 장(웃음) 시간 개념이 철저하신 아가씨네. 인터넷 프로필에서 나이는 봤고… 대 학생인가?
    지원자2학년까지 다니고 휴학 중이에요.
    사 장전공이 뭔가?
    지원자(커피를 마시며) 예술대학 무용 전공입니다. (커피 맛에 감탄한다) 와! 커피 너무 맛있어요!
    사 장아 그래? 고마워. 좋은 원두만을 골라 쓰거든. 근데 무용과면 춤 잘 추겠네?
    지원자그냥 조금….
    사 장보여 줄 수 있나?
    지원자(당황하여) 여기에서요?
    사 장음 그래. 여기 뭐 지금 시간에 우리 둘 밖에 없고… 강요는 아니야. 예술하는 학생들 보면 참 멋있기도 하고
    그래서 말이야.
    지원자(웃으며 일어난다) 맛있는 커피를 대접해 주신 고마운 한 분의 관객을 위해 잠깐 보여드릴게요!
    사 장오! 기대된다.

    지원자는 무대 한가운데로 가서 발레 기본 동작, 팔 포지션과 발 포지션에 맞혀 춤을 춘다.

    사 장(박수를 치며) 와! 한 마리 백조가 따로 없네.
    지원자(발레 동작으로 우아하게 인사를 하며) 감사합니다!

    지원자는 다시 자리에 앉는다.

    사 장재주가 많은 아가씨네.
    지원자(고개를 저으며) 많긴요. 이거밖에 없어요.
    사 장그래. 근무시간은 알지?
    지원자예. 수, 목 오후 2시부터 9시 까지요.
    사 장바리스타 자격도 있다며?
    지원자예, 2급 있어요.
    사 장그럼 뭐 딱히 크게 가르칠 건 없겠네. 에이스야.
    지원자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에이스는 무슨요.
    사 장아니야. 난 사람을 볼 줄 알아. 학생은 잘할 거야.
    지원자(신이 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힘이 나네요!
    사 장학생이 힘 난다니 나도 힘이 나. 일단 다른 커피집들이랑 커피머신 사용법이 좀 달라서 대략적인 사용법을
    알려줄게. (일어나며) 자격이 있어도 여기만의 운영법은 알아야지.
    계산기 사용법도 알려줘야 하고 말이야.
    지원자(일어나서 발랄하게) 예!
    사 장(쓰레기통 반대편으로 걸어가며) 그렇게 어려운 건 없어. 시급은 4,000원이고….
    지원자(순간 표정이 굳는다) 잠시만요.
    사 장(걸음을 멈춘다) 무슨 문제 있나?
    지원자인터넷에서는 분명 5,000원이라고 되어있던데 왜 4,000원이죠?
    사 장아! 그걸 말했어야 했는데… 사실 이곳은 신점이고 규모가 좀 작잖아. 학생하고 다른 타임에 알바생들까지
    합치면 총 4명이야. 5,000원은 좀 빠듯해. (다독이며) 안 준다는 게 아냐! 커피 맛있잖아? 내 예상하는데
    이곳 매상이 쭉쭉 오를 거야. 조만간 여유가 생기면 그땐 5,000원씩 꼬박꼬박 줄게. 혹시나 알아?
    기대 이상으로 올라가면 더 줄지도….
    지원자(단호하게) 저 그냥 안 할래요.

    잠깐 정적

    사 장(웃음을 잃지 않는다) 뭐라고 학생?
    지원자안 한다고요.
    사 장그래? 왜?
    지원자 당연한 걸 왜 물어요? 원래 법적으로 5,000원인데 사장님은 천 원이나 시급을 내리니까 그런 거죠.
    사 장그래서 안 한다?
    지원자예. (고개를 살짝 숙이고) 수고하세요.

    지원자는 테이블 위의 가방을 들고 카페 출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열려는 순간, 사장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는다.

    사 장(그녀를 경멸스럽게 바라보며) 쇼를 한다! 쇼를 해!
    지원자(놀라서 사장을 돌아보며) 쇼를 한다니요… 무슨 말씀이죠?
    사 장(비웃음) 아니 실로 찌질하기 짝이 없어 그래. 네 말이 말이야.
    지원자(사장에게 다시 가까이 다가가) 왜죠?
    사 장패배자들이 하는 전형적인 패턴을 걷고 있잖아.
    지원자전형적인 패턴이요?
    사 장사실 우리 집 근처가 너희 대학이라서 너 같은 애들 잘 아는데, 니들은 세상 어떤 기준을 취득하거나
    치열한 노력을 통한 성취 같은 건 관심 없고, 아니 애써 외면하고, 니들이 편하게 할 수 있고 또한 하고 싶은 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꿈이 스펙을 이긴다니 그런 소리 하면서 말이야.
    지원자그게 왜 어때서요?
    사 장근데, 왜 그 잘나신 꿈은 어디다 놔두고 바리스타 자격증 같은 건 땄어?
    지원자(침묵)
    사 장솔직히 말해봐. 밖에 나가서 무용 같은 걸로 밥 벌어먹기 힘들고, 학원도 포화 상태니까 보험용으로 딴 거
    아니야?
    지원자어째서 사장님 멋대로 절 판단해요?
    사 장솔직히 니네 먹고살려면 상 같은 거 따야 되잖아. 뭐 나가서 국제, 아니 국내 대회라도 입상한 거 있어?
    그런 주제에 여자 자존심은 있어서 가방은 고급으로 달고 다녀요, 쥐뿔도… 아주.
    지원자(침묵)
    사 장없지? 꿈이 스펙을 이기니 그딴 소리를 하고 있는데, 결국 니네도 스펙이야.
    네 경쟁력은 2,3 개월 하면 다 따는 커피 쟁이 2급 자격증뿐이지. 하긴, 그 것도 스펙이니. 안 그래?
    지원자그건….
    사 장(자르며) 유명 프렌차이즈 카페 가면 힘들 것 같고, 그나마 작은 개인 카페면 편할 것 같으니 여기 온 거잖아.
    그러면서 시급을 따져? 여기 너 말고 다른 알바 세 명도 그 지랄 불평을 하다 결국 여기서 일해요.
    여긴 좀 편하거든.
    지원자그 애들이랑 전 달라요!
    사 장니들, 소위 예술 한다는 애들 말이야. 사회적 지위나 스펙이 비인간적이라고 믿지?
    그것도 사이비 종교처럼 광신적으로 말이야. 하지만 너도 살아보면 알 거다. 꿈이 허황된 속물이 되는 건
    종종 있어도, 스펙은 속물일 수는 없다는 거야. 스펙은 실속이야 실속. 하긴, 당장 무용도 잘 안 되니까
    몇 년 휴학이 나 때리고…
    시간 이러 저리 허비했잖아? 여대생이 25살이나 먹고 말이야.
    지원자(혀를 찬다)
    사 장그래, 너의 그 예술적 꿈은 존중한다. 근데 네 꿈을 입증할 상하나 있냐?
    지원자전 예술을 할 때 상이 목표가 아니에요.
    사 장그래도 중요한 수단은 되지 않을까? 당장 그게 없으니까 나이는 먹어가고 초조하니까 바리스타 자격 같은 거나
    시험 본 거고 말이야.
    지원자(침묵)
    사 장여기서 일 안 하는 건 좋은데 진심으로 네 인생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정말 꿈이 있다면 노력을 해서
    먼저 스펙을 따라. 그럼 그 스펙조차도 숭고해질 테니까. 그래야 꿈이 가까워지는 거야. 그럴 능력은 없어 알바나
    기웃거린다면 그 알량한 지위에 맞게 행동하던가 말이야. 주어진 여건에 최선 다해 살면 결국 인정받게
    되어 있어.알았니?

    잠깐 정적

    지원자(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군요. 알겠어요.
    사 장(측은지심이 들어) 미안해, 학생…. 기분 상하게 해서… 나쁜 뜻으로 말한 게 아니라 열심히 살라는 거야!
    (웃음) 아직 안 늦었어! 열심히 살면 기회도 오 고 또 여자는 남편 잘 만나기만 하면….

    지원자는 사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테이블 위의 커피 잔을 들고 바닥에 쏟아 버린 뒤 빈 잔을 다시 테이블 위에 놓는다.

    사 장(당황하여) 뭐야?
    지원자(사장의 말투를 따라 한다) 쇼를 해요! 쇼를 해!
    사 장이게 미쳤나?
    지원자미친 건 사장님이죠.
    사 장(어이가 없어) 뭐?
    지원자커피 가격이 오천 원이니 방금 보여준 발레 공연으로 퉁쳐요.
    당신 같은 사람에게 보여주긴 정말 아까운 예술이었어요.
    사 장(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온다.)
    지원자(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통화를 하며) 거기 경찰서죠? (사이) 예. 불법 운영 가게 좀 고발하려고요.
    사 장(겁에 질려) 하, 학생….
    지원자경찰서 바로 건너편 사거리 카페인데요. 사랑의 카페라고… 사랑은 개뿔. 법적으로 시급이 5,000원인데
    아르바이트 학생에게는 4,000원밖에 안 줘요. (사이) 예. (사이) 아니요. 제가 경찰서 가서 직접 진술할게요.
    (사이) 예.(전화를 끊는다.) 저 먼저 경찰서에 가 있을게요. 좀 있다가 경찰서에서 전화 오 면 사장님도 오세요.
    (웃음) 아니 경찰 분들이 오셔서 안내해주시겠네요.
    사 장(비굴하게) 학생, 왜 그래? 이럴 거 어, 없잖아… 난 단지….
    지원자가방은 내가 내 돈 모아 산거예요. 내가 내 돈으로 산 건데 고급이든 짝퉁이든 댁이 뭔 상관이죠?
    사 장그게….
    지원자그리고 저 이번 연도에 한국 무용 대상 받았어요. 아깐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이가 없어서 말 못한 거고요.
    그래요, 등록금이 부족해서 잠시 돈 벌려고 왔어요. 저를 위해 노력하시는 엄마 아빠 힘 덜어 드리려고요.
    예! 이것도 스펙이죠. 근데 이건 그야말로 수단이에요. 스펙! 중요하긴 하지만 난 이 스펙이 꿈이 아니에요.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을 감동시키는 게 내 최종 목표에요. 그게 내 꿈이에요.
    사장님은 꿈이 뭔가요? 그렇게 인생 사는 법을 잘 알아서 나이 오십 넘어 변두리에 커피집 차리셨어요?
    사 장이 년아! 함부로 말하지 마! 이래봬도 남들 다 아는 유명 대학에 대기업 부장까지 한 몸이야!
    지원자그래서 결국 나이 먹어 쓸모없으니 잘리고 카페나 차리셨어요? 아, 그리고 욕까지 했으니 경찰에게
    이것도 말할게요.
    사 장(침묵)
    지원자어이가 없죠? (사이) 제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도 사장님만의 사정이 있을 테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저만의 삶의 사정이 있어요.
    사 장학생 난….
    지원자(자르며) 듣고 싶지 않아요. 다른 건 몰라도 사장이란 분이 불법적으로 아르바이트 학생들 시급이나
    착취하려 한 건 사실이니까요. 벼룩의 간이라 하나… 어르신들 말씀에. 그냥 가려 했는데 사장님의
    위대한 논리를 듣고 감동해 서 경찰에 신고했어요. 경찰에서도 그 위대한 논리를 펼쳐 보세요. 알겠죠?
    사 장저기, 학생 이러지 말고….
    지원자전 갑니다.

    자원자 퇴장하려 출입구를 향해 걸어간다.

    지원자(출입구에서 뒤도 안 돌아보며) 좀 있으면 전화가 갈 거예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그렇게 살아서 돌아온 게 과연 뭔지… 사장님 말씀이 맞으면 세상은 진짜 기계가 사는
    세상이겠죠.(돌아서 사장을 다시 보며) 과연 사장님은 몇 등급 스펙의 기계일까요?
    사 장학생… 저, 저기 흥분하지 말고 이성적으로 생각해봐. 학생 하나 때문에 알바 학생 4명이 피해 볼 수도 있어.
    지원자(한심하다는 듯) 변명을 해도 하여간… 망하는 거 당신이고, 알바생들은 착취당했던 밀린 돈을 받겠죠.
    이게 제가 생각하는 이성적인 생각이에요. 철학가 사장님, (힘차게) 좀 이따 봐요!

    지원자 퇴장한다. 사장은 지원자가 퇴장한 곳을 향해 잠시 멍하니 바라보다 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테이블 한쪽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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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카페에서의 담론, 최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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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호   2014-05-21   덧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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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1st
지원자, 사장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즐겁네요, 잘 읽었습니다. 특히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고 관객을 감동시키는 게 내 최종 목표] 너무 좋으네요~

2014-05-22댓글쓰기 댓글삭제

최준호
stage1st/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

2014-05-22댓글쓰기 댓글삭제

김세한
속이다시원하네요 얼굴이나한번뵙고싶네요 작가님

2014-05-22댓글쓰기 댓글삭제

최준호
김작가는 올라올때 나에게 들리시오ㅋㅋ

2014-05-22댓글쓰기 댓글삭제

play
모바일 영상?이 없는 건가요? 배우들의 연기가 너무 궁굼하네요.

2014-06-02댓글쓰기 댓글삭제

오세혁
play님-실은 보바일 연극은 극단 걸판이 여유 시간을 틈타 제작하는데, 이번에 워낙 시간이 없어서 ㅠ 제주도 공연 가서 찍어올 예정입니다! 기다려 주시길!

2014-06-06댓글쓰기 댓글삭제

play
극단 걸판의 연극이 기대돼네요. 카페에서 일어난 사회적 담론을 실제로 엿 볼수 있다니 감사합니다, 오세혁님...

2014-06-08댓글쓰기 댓글삭제

장미빛바다
속시원한 희곡이군요.무대에서 배우들의 움직임이 보이고 대사가 살아 있네요.그냥 술술 읽히는 희곡이 정답인가봐요.

2014-11-0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