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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e, June

윤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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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현지

    ggchagall@gmail.com


    등장인물
    여자. 30대 중반
    남자. 20대 초반
    기획자. 20대 후반
    작가. 30대 중반



    무대는 두 구역으로 나누어진다. 무대의 오른편 앞쪽은 횡단보도 앞으로 설정되어 있고 무대 뒤켠에 작은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마주보고 놓여 있다. 신호등 바로 옆에는 남자가 서있고 테이블에 작가가 앉아있다. 작가는 남자를 유심히 바라보고 남자는 그 시선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무대 로 들어오는 여자, 남자 근처에 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린다. 음악이 끝나면 기획자, 허겁지겁 들어온다.



    기획자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작 가네.
    기획자네?
    작 가아니요. 저도 금방 왔어요.
    기획자요 앞에 차가 너무 막혀서요. 이 시간에 홍대, 당연히 막히는 건데 제가 깜박했어요.
    또 뭘 그렇게 보고 계세요?
    작 가저 남자요.
    기획자아, 횡단보도 앞에... 오늘은 어떤 이야길 해볼까요?
    작 가저 남자, 항상 저 자리에 서있어요. 언제부턴지는 모르지만 꽤 된 것 같아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도 같고.
    기획자아는 분이세요?
    작 가모르지만 알죠.
    기획자작가님.
    작 가그 옆에 있는 여자는 어떤 것 같아요?
    기획자글쎄요.
    작 가말해 봐요.
    기획자우리 대본 이야기부터 하면 안 될 까요?

    작가, 대답하지 않고 기획자를 채근한다.

    기획자(귀찮지만 성실하게 답한다) 아주 오랜만에 이곳에 왔을 거 에요. 나이는 서른 즈음?
    어디 지옥에 끌려갔다온 사람 같은 표정을 짓고 있고. 옷차림도 칙칙하고.
    캐릭터로 쓰기에는 너무 우울해요.
    작 가남자는 어때요? 전혀 우울하지 않잖아요. 키도 크고, 어리고, 인상도 좋고.
    기획자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아까 오는 길에 버스에서도 본 것 같아요.
    한 네, 다섯 명 쯤? (자리를 고쳐 앉으며) 더 이상 평범한 사람 이야기는 통하지 않아요.
    요즘 대세는 판타지라고요. 초능력자,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고...
    작 가꼭 해야 하는 이야기를 하면 되죠.
    기획자작가님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남 자저 빌딩 알아요?

    작가는 남자를 바라보고, 기획자는 작가를 바라본다.

    남 자저 빌딩이 원래 뭐였는지 알아요? 저 자리가 십몇 년 전에 백화점이 있던 자리였어요.
    당시 제일 크고 제일 화려한 백화점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그 거대하고 아름답던 게
    한순간에 쿵, 하고 내려앉았어요. 백화점 하나가 내려앉은 게 아니었어요.
    그 날 그 곳에 있던 사람들 가족, 친척, 친구… 몇 천 명 가슴이 쿵.
    그래서 매일 이 곳에선 쿵쿵 소리가 들린대요.
    여 자들려요?

    (사이)
    여자, 남자를 응시한다. 남자는 찬찬히 입을 뗀다.

    남 자들려요? 들리냐구요. 혹시 당신... 그 때요. 당신도 죽었냐구요.
    그러니까 내 말은 저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여 자아뇨
    남 자그 말은 당신은 죽지 않았다는 거죠?
    여 자저 말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요. 이틀 전에.
    남 자아, 미안해요. 그럼 그 날 여기 없었다는 거죠?
    여 자난 그 때 학교에 있었어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죠.
    남 자아... (사이) 다행이네요.

    여자, 웃는다.

    여 자엄마가 있었어요. 여기에.

    정적.

    남 자아, 어머님께서. 많이 힘들었겠네요.
    여 자누가요?
    남 자당신이요.
    여 자내가 왜요?
    남 자갑자기 잃었잖아요. 당신 어머니.

    작 가남자는 잠시 생각에 빠져요.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죠.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살의
    남자아이,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던 단칸방, 그리고 하나뿐인 가족, 그의 누나.
    기획자저 여자 가는 데요?

    남자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여자는 들어왔던 방향 그대로 퇴장한다.

    남 자저기요! 잠깐만요!

    몇 발자국 여자를 따라가다 마는 남자, 안타까워한다.

    기획자여자가 가버렸어요.
    작 가그러네요. 갔네요.
    기획자우리도 이제 그만 우리 이야길 할까요?
    작 가이 이야기는 어때요? 지금 저 사람들 이야기.
    기획자저 사람들 이야기를 하자구요?
    작 가네.
    기획자가난하고, 가족이라곤 누나 하나뿐인 남자가 횡단보도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말 거는 이야기요?
    작 가아니요. 아주 아주 예쁘고 찬란한 열다섯을 보내던 한 여자아이가 엄마를 잃고 남겨진 이야기요.
    기획자지금 유가족 이야기를 하자는 거 에요? 그건... 너무 흔해요.
    작 가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흔하죠.
    기획자위험하고 어려워요. 상처를 헤집는 꼴이 될 수도 있어요.
    작 가그러지 않으면 되죠.
    기획자그게 쉽지 않아요.
    작 가그럼 그 사람들은 어떡하죠? 너무 위험하고 어려우니까 그 사람들 모른 척 해야 하나요?
    기획자모른 척 하자는 게 아니잖아요.
    작 가아까 여기 오는 버스 안에서도 저런 사람 많이 봤다고 했죠?
    오늘 우리가 지나친 사람들 중에 '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어요.
    겉보기엔 너무 흔하죠. 그냥 평범한 사람들인데 사실은 아닌 거 에요.
    기획자그렇겠죠. 모든 사람한텐 다 사연이 있잖아요.
    작 가아뇨. 나는 저 여자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작가, 다시 횡단보도 쪽을 바라본다. 기획자, 한숨 쉰다.

    작 가남자는 그렇게 여자를 기다려요. 다음날, 그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여자, 들어온다.

    남 자기다렸어요.
    여 자나 알아요?
    남 자아뇨.
    여 자그럼 나 좀 내버려 둬요.
    남 자난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요. (사이) 그 사람이 당신일지도 몰라요.
    여 자내가 왜 그쪽이랑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남 자내가 기다리는 사람이 당신일 수도 있으니까요.
    여 자바라는 게 뭐에요?
    남 자당신이 불행하지 않은 거요.
    여 자뭐라구요?
    남 자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거요.
    여 자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 에요? 그쪽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데요? 그만해요!

    자리를 떠나려는 여자.

    남 자그럼 아무 말도 하지 마요.

    여자, 남자를 바라본다.

    남 자아무 말도 하지 마요. 그냥 나 혼자 떠들 테니까 잠깐만...
    여 자아무 말도 하지 마라.
    남 자네?
    여 자아무 말도 하지 마라...
    남 자그냥 말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어요.
    여 자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남 자아버지요?
    여 자엄마 장례식장에서 그렇게 말하셨어요.
    남 자...그냥 힘들 테니 아무 말도 하지 말라 하신 거겠죠.
    여 자아뇨. 절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어요. 그래서 난 정말 아무 말도 안했어요.
    남 자왜요?

    여자, 남자의 눈을 피한다.

    여 자엄마 유품이 운동화 박스였어요. 그걸 주면서 그러시더라구요.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남 자...설마 당신 꺼?
    여 자난 그냥, 친구들이랑 같은 운동화를 신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난 고작 열다섯이었다구요.

    (사이)

    남 자사람들은 처음에 백화점 사장을 욕하다가 나중에는 신을 탓했어요. 마지막엔 자신을
    원망했구요. 짧게는 서너 달, 길게는 십팔 년. 절대 자기 잘못이 아닌데, 당신처럼요.

    여 자나는 내 잘못이에요.
    남 자아뇨. 당신 잘못 아니에요. 당신이 그런 게 아니라구요.
    여 자내가 엄마를 죽였다구요!
    남 자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당신 어머니두요.
    여 자그 쪽이 우리 엄마라도 돼요?
    남 자그 날 이후에 한동안 사람들은 텔레비전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해야만 했어요.
    이름이 나오지 않는 날엔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그러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흘러가는 자막에서 보게 되고. 결말은 대개 다 이런 식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 마음은 다 같아요. 당신도요.
    여 자다 안다고 착각하는 거겠죠.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래요?
    내가 운동화 바꿔달라고 말만 하지 않았어도...

    기획자가 말하기 시작한다.

    기획자한 여중생이 학교 안 공중전화로 누군가에게 화를 내죠. 수화기를 세게 내려놓고,
    터덜터덜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요. 그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굉음이 들리고
    뉴스 소리가 어지럽게 깔리고… 여자가 원하던 운동화는 다른 운동화였죠.
    여자의 (여자, 함께 말한다) 엄마가 그 전전날부터 몸이 아프다고 했는데 거기다 대고
    짜증을 냈어요. 전화기를 끊으며 말했죠. 엄마, 미워!
    작 가이런 비극이 일어나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아주 조금씩 죄책감과 상처를 덜어가요. 그들이 남겨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래도 남겨졌기 때문에 살아가기 위해서.
    남 자아무도 바라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였어요. 돌이키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거 이제는 알잖아요. 당신은 너무 오랫동안 힘들어하고 있어요.
    듣고 싶어요. 왜 그렇게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지.
    여 자나 그 날 이후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보다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게 용서가 안돼요. 이제는 아무도 날 용서할 수 없어요.

    남자, 장난스럽게 말문을 연다.

    남 자나야 말로 십칠 년째 누가 날 용서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난 떠난 놈이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당신 같았어요. 나는 지금처럼 위로도 해줄 수 없고,
    그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더 불쌍해졌는지 알 수도 없어요. 내가 그 사람을 떠났으니까.
    내가 왜 떠나야만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그 사람을 떠났고 그 사람은 남겨졌고, 내가 더 잘못한 거죠.
    나는 그냥, 나 때문에 남겨진 그 사람이 더 이상 아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여 자당신...
    남 자원래 떠난 사람보다 남겨진 사람이 더 아픈 거니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짧은 사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난 사람들 마음도 다 똑같아요. 나는 당신도, 당신 어머니도
    아니지만 그건 알아요.
    여 자당신 참 어른 같아요.
    남 자어른이에요. 그 사람 떠날 땐 스무살이었지만.
    여 자우리 엄마, 아직 마흔일까요?
    남 자글쎄요. 당신이 기억하는 어머니가 마흔이라면 마흔이시겠죠.

    (사이)

    여 자이젠 우리 엄마 보러 가야겠어요.

    여자, 앞을 바라보고 남자도 여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남 자정말 좋아 하실 거예요.
    여 자고마워요.

    남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횡단보도의 불이 초록색으로 바뀌고 여자는 천천히 나간다.

    고개 숙이는 남자. 남자는 처절하게, 작가와 기획자는 담담히 말한다.

    남 자살려주세요...
    작 가제발.
    남 자나 아직 죽으면 안돼요...
    작 가우리 누난 어떡하라고.
    남 자(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거기... 사람 있어요?
    작 가여기 사람 있어요.
    기획자곧 죽을 거예요, 우린.
    남 자뭐라구요? 곧 죽을 거라구요? 미쳤어요?
    작 가사람들이 우릴 구하러 올 거 에요. 정신 차려요.
    남 자그 쪽은 죽는 게 좋아요? 가족 없어요?
    기획자기도해요. 우리의 가족을 위해서.
    작 가무슨 얼어 죽을 기도, 지금 내가 죽게 생겼다구요.
    남 자지금 나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냐고!
    기획자우리보다 불쌍한 사람은 우리 가족이죠.
    남 자무슨 개소리에요!
    기획자난 딸이 있어요. 오늘 아침에 사랑한단 말도 못했는데. 사랑한단 말도 못 들었거든요.
    작 가살아서 하면 되잖아요, 사랑한다는 말은!
    남 자지금 그게 문제에요?
    기획자나는 곧 죽을 거고 그러면 다 끝날 테죠. 하지만 오늘 나한테 사랑한단 말 한마디 못한
    내 딸, 내 남편… 불쌍해서 어떡하죠? 남은 사람들은 지금부터 불행하게 살 거예요.
    우리를 어깨에 짐처럼 얹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기도해요. 부디 그들이
    불행하지 않기를, 너무 많이 슬퍼하지 않기를.
    남 자짐처럼, 나를... 우리 누나가?

    기획자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작 가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남자, 여자 나간 방향으로 퇴장한다. 나란히 횡단보도를 보고 있던 기획자와 작가는 다시 서로를 바라본다.

    기획자이 다음은 어떻게 돼요?
    작 가여자가 길을 건너고, 그 때 그 자리에 앉아 엉엉 울겠죠.
    엄마한테 못 다한 말을 할 수도 있고.
    기획자그리고요?
    작 가살아가겠죠, 다시. 괜찮다고 말해줬으니까.
    기획자그게 뭐에요.
    작 가그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요.
    기획자이 이야기가 그 사람들 상처를 달래줄 수 있을까요?
    작 가사람들은 다들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고 살잖아요. 우린 서로에게 괜찮다고,
    당신은 이제 그만 아파해도 된다고 말해줘야 해요. 그래야 그 유월에 남겨져 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요. 나 이 이야기 꼭 하고 싶어요.

    기획자, 작가를 쳐다본다. 한숨 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작가소개

 

태그 Bye, June, 윤현지, 10분희곡릴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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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46호   2014-06-03   덧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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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mg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됩니다!

2014-06-05댓글쓰기 댓글삭제

오세혁
많은 애정과 지지를 쭈욱 부탁 드립니다!

2014-06-05댓글쓰기 댓글삭제

고프로
연극으로 직접 보면 더 좋겠어요~~ 준비하는 소파 프로젝트도 기대할게요!

2014-06-05댓글쓰기 댓글삭제

오세혁
고프로님-연극센터에서 하반기에 깜짝 페스티벌을 열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2014-06-06댓글쓰기 댓글삭제

이민호
강남 리얼리즘이라니 흥미롭네요. 연극으로 꼭 보고 싶습니다!

2014-06-07댓글쓰기 댓글삭제

서은지
다음 작품도 어서 보고싶어요 작가만의 색깔이 다양해서 좋은 것 같아요

2014-06-10댓글쓰기 댓글삭제

오세혁
이민호님-하반기를 기대해주십쇼! ㅎ

2014-06-17댓글쓰기 댓글삭제

오세혁
서은지님-다음 작품도 곧 올라갑니다! 하하하!

2014-06-17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