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

top

연극인

검색하기

정리

원아영

목록보기

  • 링크
  • 프린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정리

    원아영

    1a02.carmine@gmail.com


    등장인물
    순옥 (엄마)
    미연 (딸)


    순옥의 집, 안방.
    조명이 켜지고, 순옥과 미연이 안방에 앉아 아버지의 장롱 속 유품을 정리한다. 순옥은 남편의 옷을 꺼내 차곡차곡 정리하고, 미연은 장롱 서랍을 꺼내 물건들을 정리한다. 순옥이 옷을 개다 말고 역정을 낸다.

    순 옥썩을 놈.
    미 연어?
    순 옥이제야 갔네. 이제야. 가라고, 가라고 해도 그렇게 안 가고 버티더니. 이제야 갔어.
    미 연뭐야. 아빠 들으면 섭섭하겠다.
    순 옥난 속 시원하다. 이 영감이 나한테 얼마나 못되게 굴었는데. 영감은 미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어.

    순옥, 투덜거리며 장롱 정리를 한다. 순옥은 장롱 구석에서 무언가 집히는 듯 한참을 뒤적이다가 남성 속옷 하나를 꺼낸다.

    순 옥(구깃구깃한 남자 속옷을 펼치며) 이것 봐! 속옷은 곱게 펴서 내놓으라고 누누이 얘기 했는데 지린내 나는 팬티가
    장롱 구석에서 나오잖아!
    미 연아빠 거야? (웃으며) 그건 좀 화 날만 하다.
    순 옥네 아빠는 만날 이랬어. 소변 본 다음에 오줌을 꼭 한 방울씩 묻히고 다녔다고. 그럼 여기 가운데가 이렇게 누렇게
    변해. 자기도 창피한 건 아는지 둘둘 말아가지고 숨겨 놓고 그랬지. 하이고. 살면서 물 한 방울 손에 안 묻혀 봤으니
    빨래 할 생각도 안 한 거야. 뻔하지, 뻔해.
    미 연자주 이랬어?
    순 옥몰랐구나? 내가 잔소리하면 막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면서 욕을 하고 그랬어. 속으론 자기도 창피했겠지.
    아이고. 죽어서도 이런 걸 남기다니. 이제 더는 안 빨아. (속옷을 미연에게 던지며) 이건 태워버리자.
    미 연그럼 아빠가 저승에 지고 가는 거 아니야?
    순 옥가지고 가라고 해. 창피한 줄 알아야지.

    미연, 속옷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 방구석으로 옮겨 놓는다. 미연, 장롱 서랍 속에 있던 지갑을 집어 들고, 그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남편 옷을 개고 있는 순옥에게 가까이 가서 한 장의 사진을 건넨다.

    미 연그래도 아빠가 이런 것도 갖고 있었더라. 꽤 로맨틱하지?
    순 옥(사진을 보며) 됐다. 치워라.
    미 연왜? 여기 엄마도 있고, 오빠랑 나도 있고. 얼마나 좋아. (서랍을 가리키며) 저기서 나왔어.
    아빠가 보관하고 있던 건가 봐. 이야, 엄마 예뻤네.
    순 옥너 기억 안 나? 저 사진 찍은 날?
    미 연글쎄?
    순 옥하이고, 답답아. 네 오빠 군대 가기 전 날 사진이야.
    미 연(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며) 응? 정말이네?
    순 옥네 아버지가 아들 하나 있다고 네 오빠를 그리 챙겼잖아.
    미 연맞아. 좋은 건 무조건 오빠 차지였어.
    순 옥연우 군대 간다고 네 아버지가 그렇게 설레발을 쳤지. 이거 챙겨라, 저거 챙겨라 야단이었어.
    미 연어, 기억난다. 나한테도 난리였는데. 오빠한테 말대꾸한다고 쥐어박고.
    순 옥그래. 연우 입대 하루 전인가? 영감이 나더러 연우 가기 전에 포식시키라면서 돈 몇 푼을 쥐어주더라.
    뭘 할까 하다가 삼계탕을 끓였어. 토종닭 네 마리를 잡아다가 푹 고아서 삼도 넣고 대추도 넣고. 그래서 상에
    올렸는데, 네 아버지 성격 드러운 거 알고 있지? 갑자기 눈이 번쩍번쩍하더니 그걸 다 엎어버리는 거야.
    미 연그래! 기억났어! 미쳤나 싶었다니까. 그 뜨거운 걸 엎어가지고.
    순 옥왜 엎었나 했더니, 상에 고기가 없다면서 그런 거였어. 하나밖에 없는 아들놈 군대 가는데 고기를 안 했다면서.
    미 연닭고기는 고기 아니야?
    순 옥네 아버지는 소고기가 아니면 고기 취급을 안 하는 사람이었다.
    미 연하여간 아빠 성격 알아줘야 해.
    순 옥그래. 그래서 연우가 화가 나서 새벽에 먼저 가버렸지.
    미 연오빠도 신경질 내는 건 아빠랑 똑 닮았어.
    순 옥그 피가 어디 가겠어? 결국, 아들 군대 보내는 거 보지도 못했지. 자기 옳은 것만 알고 내가 하는 게 죄 못 마땅
    했던 사람이었어. 네 아버지라는 사람이 말이야. 내가 그날 생각만 하면 울화통이 터져서 잠을 잘 수가 없어.
    미 연에이. 아빠가 무뚝뚝하긴 했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어.
    순 옥박가네 자식은 최가인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야. 박가 피는 속일 수 없어. 영감탱이 죽은 후에도 영감
    편을 들다니. 그 영감이 나한텐 얼마나 박했는데.
    미 연엄마도 똑같아. 아빠가 죽기 전까지 담배 한 모금 피우고 싶다고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도 담배 일절 못 피우게
    했잖아. 건강이 최우선은 무슨. 곧 돌아가실 분인데 그거 하나 못 해줘?
    순 옥네 아버지는 그래서 안 된다는 거야. 죽기 직전이면 토끼 같은 자식들이랑 여우같은 마누라 생각이 나야지 담배가
    뭐야, 담배가. 네 아버지가 그렇게 무드 없는 사람이었다.
    미 연무드를 논하자는 게 아니지.
    순 옥며칠 더 숨 붙게 해보려고 한 건데 그게 그렇게 큰 잘못인 것처럼 이야기 하네.
    미 연아니, 그건 아니지만……,
    순 옥됐다. 됐어. 박가네랑 더 이상 말이 안 통해. 네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박가네로 시집 와서 매일 밤마다
    밥상 엎어지고, 욕이란 욕은 다 먹던 그 설움을 알어? 애들은 빽빽 울지, 남편은 빽빽 소리 지르지…….
    (개던 옷을 내려놓으며) 이것도 지긋지긋했는데 이제 끝이다 싶어서 잘 됐지 뭐야.
    미 연아유, 그만해.
    순 옥가기 전에 마누라 손 한 번 잡고 그간 미안했소, 내가 잘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했소, 이렇게 하면 얼마나 좋아.
    아니면 지 새끼들한테 덕담이라도 한 마디 해주든가.
    미 연아빠가 그럴 성격은 아니었잖아.
    순 옥연우도 봐라. 지 애비 똑 닮아가지고 물건 챙기러 오지도 않는 거. 하여간 못된 것만 배웠어. 지 아버지 못된 것만
    빼다 박았다고.
    미 연아, 됐어. 왜 자꾸 청승맞게!
    순 옥빽빽거리는 것도 지 애비 똑 닮아가지곤…….

    미연, 대답하지 않는다. 순옥은 조용히 옷을 개고, 미연은 서랍을 정리한다. 침묵 속에서 순옥이 작은 목소리로 말문을 뗀다.

    순 옥네 아버지한테 가장 서운한 건, 처녀 적부터 지금까지 나한테 다정한 말 한마디 안 하고 이렇게 훌쩍 가버렸다는
    거야.
    미 연…….
    순 옥단 한 번도 살가웠던 적이 없어. 하늘도 무심하지. 영감탱이 호흡기 달고 쌕쌕 거릴 때 날 데려가주소, 하느님,
    내가 먼저 가겠소, 했는데 영감을 먼저 데려가네.
    미 연…….
    순 옥고왔을 때 손 한 번 잡아주고, 어깨 한 번 도닥여 줬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어. 나이 먹고 늘그막에 아주 조금
    살가워지나 싶었는데 이렇게 훅 떠나버릴 줄 누가 알았겠니. 망할 놈의 영감탱이. 반성 많이 해야 돼.
    지옥 불에나 떨어져라.
    미 연엄마!
    순 옥(사이) 호통 치지 마라. 안 그래도 내 맘이 맘 같지가 않어.

    순옥과 미연, 말없이 유품을 정리한다. 순옥은 다시 남편의 옷을 개며 장롱 속을 정리한다. 순옥은 남편의 유품이 나올 때마다 욕을 늘어놓고, 미연은 순옥의 눈치를 본다. 순옥이 다시 장롱 구석에 손을 집어넣어 뭔가를 꺼낸다.

    순 옥하이고, 또 나왔다. 오줌 지린 팬티.
    미 연(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태워, 태우자.

    미연, 속옷을 방구석으로 던진다. 순옥은 손에 사진 한 장을 꼭 쥐고 있다.

    끝.

작가소개

 

태그 정리, 원아영, 10분희곡릴레이

목록보기

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50호   2014-08-21   덧글 6
댓글쓰기   
덧글쓰기

stage1st
누군가 장례식장 앞에서 펑펑 울면서 육두문자 날리던 날이 생각나네요, 정리 좋으네요^^ 숨 놓고 ☞ 숨겨 놓고 / 네가 스무 살 ☞ 내가 스무 살

2014-07-17댓글쓰기 댓글삭제

까만콩
재밌게 읽었습니다 ^^ ㅎㅎ

2014-07-18댓글쓰기 댓글삭제

조르바
좋은 감성이네요^^

2014-07-18댓글쓰기 댓글삭제

조르바
좋은 감성이네요^^

2014-07-18댓글쓰기 댓글삭제

연극센터
'숨 놓고'->'숨겨 놓고'로 수정. 주어 '네가'와 연결된 서술어는 '시집 와서'가 아니라 '알어?'이므로 '네가'가 맞습니다. 세심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14-07-24댓글쓰기 댓글삭제

그린티라떼
극으로도 봤었는데 시나리오로 읽었을 때의 감동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순옥이 말과는 다른 행동을 보이며 남편에 대한 미련을 보이는 것이 정말 인상깊었어요. 마지막 장면에서 사진 한 장을 꼭 쥐고 있는 부분이 특히요. 말을 하지 않고, 어떠한 큰 행동을 하지 않아도 순옥의 감정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아 뭉클했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작품도 기대할게요 :D!

2015-02-16댓글쓰기 댓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