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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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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의원 (50대, 국회의원)
목사 (30대, 목사)
직원 (20대, 직원)

붉은 빛이 도는 정육식당, 테이블 두 개가 나란히 놓여있다.
특별한 능력이 부여되는 신체 부위를 판매하는 메뉴판이 걸려있다.
의원과 목사, 등장해 각 테이블에 앉는다.
의원과 목사, 테이블 위에 지폐를 올려둔다.

의·목
(동시에) 여기 거짓말쟁이 혀 하나요.
직원
저, 죄송한데… 지금 거짓말쟁이 혀가 하나뿐이라….
의원
아….
직원
그럼 어느 쪽에 드릴까요?
목사
그럼 전 내일 오죠.
직원
저 그게….
의원
아니, 내가 양보하지.
목사
아뇨, 제가 내일 올게요.
의원
아니, 내가 내일 온다구.
목사
아니요, 제가 양보할게요.
의원
(웃으며) 젊은 놈이 참 고집 한 번 세다. 내가 양보한다잖아.
직원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내일 오셔도 거짓말쟁이 혀는 드실 수가 없어요.
목사
그럼 언제 올까요? 모레? 낼모레?
직원
스스로를 거짓말쟁이라고 인정하는 솔직한 거짓말쟁이는 찾기 어려워서…
의원
그럼 언제 오라는 거예요?
직원
그게… 언제라고 정확히 말씀을 못드려요.
목사
어… 그렇담 양보 못하죠. 여기로 주세요.
의원
양보 못하는 건 나도 마찬가지죠. 여기로 주세요.
직원
(혀를 들고) 어… 그럼 어디에?
의·목
여기요.
의원
(돈을 테이블에 올리며) 돈을 따블로 쳐주지.
목사
(돈을 테이블에 올리며) 그럼 전 돈을 따따블로 쳐드릴게요.
의원
아이고, 웨이터 선생. 내가 진짜 급해서 그래.
목사
선생님, 저도 진짜 진짜 진짜 급하다구요. 할레루음보살.
의원
(돈을 테이블에 올리며) 그렇담 따따블 받고 따따블 더!
목사
(옷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럼 전 제가 가진거 다 드리죠.
의원
(옷을 벗어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그렇담 나두.
목사
(자신의 몸을 살피다 양말도 벗는다) 이것두 다 가져요.
의원
(넥타이를 벗으려다 벗지 못하고) 넌 뭐하는 놈이길래 거짓말쟁이 혀를 먹어서까지 거짓말을 잘하려고 안달이야? 뭐, 정수기라도 파시나봐?
목사
그러는 아저씨는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시길래 거짓말을 잘하려고 안달이세요?
의원
뭐? 내가 이래봬도 나랏일 하는 사람이야.
목사
아, 나랏일. 그러니까 나라가 이모양 이꼴이죠. 정치한다는 사람이 거짓말쟁이 혀를 못 먹어 안달이라니, 오 구원하소서. 나무아멘.
의원
네깟놈이 정치에 대해 뭘 안다 그래? 나는 이번 선거 때 꼭 당선돼야해. 군 면제 때 쓴 돈이며 입당할 때 쓴 돈이며 남은 건 사채 빚뿐이야. 난 이 혀가 꼭 필요해.
목사
아니 당선 되는 거랑 거짓말 잘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의원
한 표 한 표가 누가 더 거짓말을 잘하느냐에 달렸어. 하지만 난 선천적으로 거짓말만 하면 말이 심하게 느려져.
목사
그럼 느리게 천천히 거짓말 하세요.
의원
느려도 보통 느린게 아냐. 5분에 한 음절 겨우 나올까 말까해서 청문회며 연설회며 입 한 번 제대로 떼어본 적 없어.

조명 바뀌며 연설회장.
국회의원 띠를 매고 연설을 한다.

목사
의원님은 당선이 되시면 어떤 정치를 하고 싶으세요?
의원
그거야 물론 우리 서민들이 아주 잘 (슬로우모션) --------------------------
목사
시간초과입니다.
의원
일분만요, 아니 삼십초, 아니 십초. 그니까 서민을 위한 (슬로우모션) ------------

조명 바뀌며 정육식당.

목사
심하게 느려지네요.
의원
그렇다니까. 그니까 이 거짓말쟁이 혀는 내가 먹을거야.
목사
안돼요. 저도 절대 양보 못해요.
의원
(목사의 옷을 들어) 아, 뭐하는 놈인가 했더니 사이비교주구만.
목사
사이비교주라뇨, 제가 이래봬도 정식 기독교 목사에요. 목사. 나무아멘타불.
의원
나무아멘타불은 뭔 개소리야. 목사가 거짓말로 뭐, 하나님이라도 팔게?
목사
그러는 아저씨는 뭐 나라라도 파시게요?
의원
때에 따라선 어쩔 수 없이 나라를 팔기도 해. 근데 난 못 팔아.
목사
저도 때에 따라선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팔죠. 근데 저도 못 팔아요.
의원
알게 뭐야.

목사와 의원, 직원에게 접시를 뺏어 싸운다.
직원, 목사와 의원이 벗어둔 옷과 돈더미를 트렁크에 챙긴다. 의원, 목사가 숨겨둔 목탁을 발견한다.

의원
얼씨구, 목탁 치는 목사. 이거 사이비 맞네.
목사
이보세요. 저 4년제 신학대학 졸업한 목사에요. 대학원도 나왔어요. 단지 제가 믿는 종교가 불교일 뿐이죠. 우리나라는 종교의 자유가 있어요. 나무아멘타불.
의원
불교를 믿는 목사? 그게 뭔 부처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소리야.
목사
지금은 목사지만, 이래봬도 제가 불교 모태신앙이거든요. 아버지 사업이 망하면서 집안이 빚더미에 앉았죠. 텔레비전에서 보니까 교회가 돈이 좀 되더라고요. 세금도 없고. 나무아멘타불.
의원
그래? 그럼 열심히 살면 되겠네. 뭐가 문제야?
목사
아무나 돈을 잘 버는 목사가 되는 게 아니에요. 신자들한테 돈을 끌어오려면 말, 특히 거짓말을 잘 해야 해요. 할레루음보살.
의원
그럼 거짓말 열심히 하세요.
목사
이놈의 혀가 제멋대로 할레루음보살, 나무아멘타불 하고 튀어나와요. 신자들도 나를 못 믿겠다고 십일조 한 푼 안내고요.

조명 바뀌며 교회.
의원 기도한다.

의원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목사
기도하겠습니다. 불당에 계신 부처님 아버지.
의원
목사님?
목사
흠흠.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옵고 할레루음보살
의원
목사님!
목사
나라와 해탈과 열반이 부처님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나무아멘. 형제님, 자매님, 헌금은 내고 가셔야지요. 형제님, 자매님, 부처님!

조명 바뀌며 정육식당.

의원
어쨌든 그건 당신 사정이지. 난 이번에 꼭 당선이 돼야해. 내가 먹을 거야.
목사
서민을 위한다면서요. 서민, 제가 바로 서민이죠.
의원
그건 일단 당선이 된 다음에 ---------------------------------------------
목사
애초에 서민은 관심도 없군요. 오, 나무아멘타불.
의원
서민이고 나발이고 내가 먼저 살아야지. 내가 먹을 거야.
목사
학자금 대출에 교회 월세, 전기세, 수도세. 제가 먹어요.

의원, 그릇에서 혀를 꺼내 한 입 크게 베어문다.
목사, 의원의 멱살을 잡고 흔든다.

목사
아저씨 미쳤어요? 그걸 왜 아저씨가 먹어요? 구원하소서, 부처님아버지.
의원
자네도 먹어.
목사
먹긴 뭘 먹어요.
의원
아직 반 남았어. 나눠 먹자.

의원, 말과는 다르게 반쪽의 혀를 숨긴다.
목사, 남은 거짓말쟁이 혀를 뺏으려 한다.
의원과 목사, 몸싸움한다.

의원
남은 반쪽 자네가 먹어, 진짜 맛있어.
목사
줘야 먹죠. 장난해요?
의원
거짓말쟁이 혀 정말 최고야!

목사, 의원에게 억지로 혀를 빼앗아 먹는다.
의원, 목사의 멱살을 잡는다.

의원
나머지 반을 자네가 먹다니, 정말 잘했어.
목사
맛있다. 정말 맛있어요. 할렐루야,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혀가 있다니. 전지전능한 그리스도의 은총을!
의원
(멱살을 잡고 흔들며) 나머지 반을 자네가 먹다니, 자네는 대통령감이야.
목사
이렇게 양보해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평생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의원, 당황한 기색을 잡지 못하고 직원의 멱살을 잡는다.
목사, 답답한 듯 가슴을 친다.

의원
아니 이 사람아, 이 혀 효과가 정말 좋잖아. 이렇게 맛있는데 효과도 좋다니. 완벽해.
목사
할레루야, 효과가 너무 좋아 미치겠어.

목사, 직원의 멱살을 잡는다.
직원, 둘을 보며 깔깔 거리며 웃는다.

목사
이렇게 효과 좋은 혀를 판 당신한테, 억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아.
의원
우리나라를 최고의 강국으로 만들고 서민경제를 살릴 거야. 이번에 당선되면 이 가게를 국가 지정 최고의 음식점으로 만들겠어.
직원
정말이죠?
의·목
(답답해하며) 그럼, 정말이지!

직원, 멱살 잡은 손을 뿌리치고 턴다.

직원
여러분의 뜨거운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의원
당신은 최고야.
목사
이 거짓말쟁이 혀는 정말 최고라고.
직원
그런데 제가 미처 부작용을 말씀 못드렸네요. 거짓말쟁이 혀를 반쪽만 먹게 되면 절대 진실을 말할 수 없는 혀가 되죠. 결국 두 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이 거짓말이죠.
목사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축복을 내리노니. 부작용에 대해 이렇게나 빠른 설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의원
(발을 구르며 답답하다는 듯) 정말 행복해, 부작용을 이렇게 빨리 알 수 있었다니! 행복해, 거짓말쟁이 혀 만세!

직원, 둘을 지켜보다 다른 접시를 가져온다.
목사와 의원, 행동 멈춘다.
직원, 접시 커버를 열어 선홍빛의 혀를 꺼낸다.

직원
이건 진실의 혀입니다. 진실을 말할 수 있게 되죠. 단 거짓말쟁이 혀와 부작용은 동일합니다. 물론 하나뿐이죠. 누가 드실 거죠?
의원
네가 먹어.
목사
아저씨가 드세요. 전 절대 먹고 싶지 않아요. 아멘.
의원
나도 절대 먹고 싶지 않아, 제발 네가 먹어.
목사
저도 절대 먹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좋아요. 할렐루야.

직원, 가방을 꺼내 그들 앞에 벌린다.
의원과 목사, 시계며 넥타이, 목탁을 가방에 넣는다.

의원
이거 다 줄게, 제발 이 사람한테 양보하게 해줘.
목사
교회도 드릴게요. 제발 이 분께 양보하게 해줘요.
직원
두 분 다 서로 양보하겠다고 하시니 할 수 없죠. 저는 이만.

직원, 가방을 끌고 빠른 걸음으로 퇴장.
의원과 목사, 직원을 잡으려 한다.
의원이 넘어지자 목사의 다리를 잡는다.

의원
저 놈은 무조건 네가 잡아야 해. 꼭 네가 잡아.
목사
(다리를 빼려하며) 아저씨가 잡으세요. 저 놈은 무조건 아저씨가 잡아서 칭찬하세요.

의원과 목사, 몸싸움한다.
암전. 조명 IN.
의원과 목사, 쓰러져있다.
직원, 무대 가운데로 등장한다.

직원
여기 (의원과 목사 가리키며) 거짓말쟁이 혀가 두 개 있습니다. 어느 쪽에 드릴까요?

가방을 열고 씨익 웃는다.
암전.
막.

호들갑 작가소개
<혀>를 쓴 작가 장효정은 1988년 겨울에 태어났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냐’는 물음엔 그저 ‘연극을 하는 사람’이라 대답한다. 연극의 막, 덧마루, 캐미라이트 뭐라도 좋으니 그저 연극의 일부가 되고 싶다. 현재는 서울예대 극작과에서 내 삶을 이리 저리 접어보고 있다. 학도 접어보고 비행기도 접어보고 너덜너덜해지도록 접고 또 접어볼 것이다. 이렇게 접고 또 접어 무대의 모서리가 되어도 좋으니 종국엔 연극이 되고 싶다.

 

태그 10분희곡릴레이,혀,장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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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희곡릴레이는 공모를 통해 작품을 접수합니다.상반기와 하반기, 연2회 작품 공모를 시행하며 자세한 일정은 추후 공지사항을 통해 안내 드립니다. 신진작가 여러분의 많은 참여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제76호   2015-09-17   덧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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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
분명한듯 애매하게 흥미로운 이야기

2015-10-16댓글쓰기 댓글삭제

늘 품
결말 부분이 약간 이해가 안가지만 재밌습니다. 흥미롭고 새로운 소재여서 더욱 재밌네요.

2016-01-12댓글쓰기 댓글삭제